제31권 여성운동 - 제7장 여성들의 의열무장활동과 여자광복군 - 2. 국내외 여성들의 의열무장활동

고 있었다. 그는 평양지방법원 제1회 공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지만 조금도 동요치 않은 초연한 태도로 퇴정하였다. 당시 상해 임정의 경무국장인 김구와 장덕진이 그를 구하고자,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에

평남도부 폭탄사건은 임정의 특병으로 광복군사령장의 지휘하에 결사대장 장덕진이 동지 수명과 투탄 폭파케 한 것이지 안경신은 관계가 없으니 방면하라.

는 투서를 보내어 복심법원 공소판결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을 받았다.53)10년 언도가 내려졌을 때 안경신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재판장에게 한걸음 다가가, “내가 무슨 죄가 있기로 3년간이나 가두었다가 10년 징역에 처하느냐.”라고 소리를 벽력같이 질렀다. 그의 의열사로서의 면모가 확연하다 하겠다.

그는 평양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한 후 1927년 12월 14일 가출옥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출옥 후 기자의 방문을 받고, “… 언제 우리도 남과 같은 빛나는 생활을 하게 될런지요. 이 후로 과연 어떤 길을 밟아 나아가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옛날에 가졌던 뜻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독립투쟁의 뜻을 그대로 간직하겠다는 빛나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안경신의 의열활동은 의사들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한국역년의사활동요목韓國歷年義士活動要目『진광』2·3합간, 1934, 89쪽에 “안경신여사이1920년8월투탄평남도청급신의주철도반점피포판역安敬信女士以1920年8月投彈平南道廳及新義州鐵道飯店被捕判役”이라고 의사들의 활동 반열에 오른 당당한 한국의 여자의열활동가였다.

 
3. 사회주의계 항일여성 무장투쟁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간행된 『항일녀투사들』54)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한 20명의 조선족 여성들의 빛나는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 투사들의 항일열전 말미에 집필자는 명시되어 있으나 자료의 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자료 활용의 신빙성 등에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계 내지 공산주의계 여성들의 항일무장 투쟁의 정신과 양상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이 자료를 중심으로 그들의 무장투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산주의계 조선인의 항일무장투쟁은 주로 만주에서 1930년 이후 행해졌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만주 공산주의계의 항일무장 투쟁 심화 및 진전 경위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1930년 간도 5·30폭동과 8·1폭동에서 무장대가 생기고 이는 다시 노동유격대·적위대로 발전하였는데 그 주력은 조선족들이었다. 당시 한인공산주의자들은 국내외에서 내부 파벌 파쟁이 심하였었다. 1928년 코민테른의 1국1당一國一黨원칙의 지시에 따라55)만주에 있는 조선족 공산주의자들 중 다수인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1933년 1월 조선공산당의 만주 조직이 동북인민혁명군으로 성립되고, 그 사령관은 중국인이었으나 그 제1군은 조선족이 중심이된 반석중심현위盤石中心縣委와 조선족 이홍광李紅光이 조직한 공산게릴라였다. 동북인민혁명군은 1935년 11월 코민테른에서 채택한 “인민전선·전술”과 이에 따른 중공당의 “8·1지시”에 의거하여 다른 계열의 항일 무력과 연합하여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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