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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서한] 에 대한 전체 11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김구 편지

    여러분 선생께 그동안 병원에 위석하여 생사를 천명에 맡기고 세상과 인연을 끊었던 제가 달포만에 퇴원하여 여러분 동지께 소회를 사뢰고저 하오니 무슨 말씀을 먼저 시작해야 될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나이다. 지금 형편으로 보면 비록 건강이 쾌복은 되었지만 원래 중상을 당하였던 관계로 아직 어떠한 운동이든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어서 여러분과 서신을 왕래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남의 손을 빌어서 저의 심중을 고하게 되나이다. 제가 비록 단문하오나 여러분의 애호하시는 성의에 만일이라도 보답하려는 미충으로써 종래의 일체 서신은 반드시 자필로 쓰던 것이온데 이번에는 할 수 없이 성명만 자필로 쓰오니 넓게 용서하시기 바라나이다. 그러나 미구에 내 손으로 붓을 잡게 되면 내 상머리에 산같이 쌓인 동지 여러분의 혜찰을 일일이 친필로써 봉답하겠나이다. 지난 오월 칠일 하오 여섯시 이십분 가량해서 저는 조선혁명당 당부에서 그 당의 간부들과 만찬을 함께 먹기 시작하다가 돌연히 흉한에게 육혈포 조격을 입어 즉석에 혼도하였었습니다. 첫 방에 가슴을 맞고 정신을 잃어서 그 당시에 제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좌우의 여러 동지들은 제가 생명을 아주 잃을 줄 알고 크게 슬퍼하였다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현익철동지는 즉시에 세상을 떠나고 유동열, 이청천 두 동지도 조격을 당하였는데 다행히 이동지는 손에 약간의 경상을 입어 아무 장애가 없었고 유동지는 복부에 중상을 당하였다 합니다. 그리하여 유동지는 저와 같이 일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하고 나왔습니다. 그 세분은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혁명당의 간부입니다. 그 중에 유, 이 두 동지는 다시 소개할 것도 없거니와 현동지도 일찍이 만주에서 가장 건전히 분투하던 령수인물로서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 몇 해 동안 철창의 고초를 겪었고 수년 전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여 금일까지 계속 분투하는 우리 중에서 다시 구하기 드문 투사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줄 생각하나이다. 동지 여러분은 이 흉보를 접하실 때에 국사를 위하여 놀라시며 저를 위하여 걱정하실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옛말에도 다난흥방(多難興邦)이라 하였으니 우리가 풍파를 겪을수록 우리의 사업은 더욱 공고하게 진전될 것입니다. 이러한 실례는 지금 중국의 항일운동에서도 목도하는 바이지만 과연 원동의 우리 사회는 이번의 변을 치른 뒤에 더욱 굳게 단결되며 어느 동지든지 일호도 회심치 아니하고 더욱 건전히 분투하나이다. 심지어 저 개인하에는 애국운동을 시작하던 그날부터 구구한 일신의 생명은 심중에 두지 아니하였던 것이니 어느 날에든지 이러한 죽음이 있을 것을 미리부터 각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분한 것도 없고 낙심되는 것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최후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앞으로 더욱 분투노력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이 결심은 이번에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십년 전에 인천감옥을 탈주한 사형수 김창수 시절부터 벌써 한 것입니다. 이만한 것을 평소부터 알아주시는 동지 여러분께서는 저를 위하여 큰 걱정은 아니하시리라고 믿는 바이지만 더구나 지금은 퇴원까지 하였사오니 크게 안심하실 줄 생각하나이다. 흉수 이운환(李雲煥)은 일개의 불량분자로서 수삭 전에 조선혁명당에서 출당까지 당하였는데 사변발생 후 육일 만에 중국군경에서 체포되어 현재 연루자들과 함께 심리 중에 있은즉 그 간계의 전후 전말은 미구에 정식으로 발표되려니와 그 행동이 반혁명적이며 왜적에게 상을 탈만한 짓이라는 것은 누구나 의심할 여지가 없나이다. 저는 일생에 충과 의를 지키기에 힘을 써왔으며 또 성질이 소탈하므로 심중이 항상 탄백하여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외국 동지들이 저의 일신의 보호를 위하여 염려할 때는 언제나 일소에 부치고 어디든지 단신으로 다니던 것입니다. 더구나 제가 사십년 전에 인천서 탈옥한 사실은 거의 무인부지로되 왜놈만은 제가 상해로 나온 뒤에야 이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또 연전에 제가 상해에 있을 때에는 왜령사관의 지촉을 받아가지고 저를 죽이려고 단포를 휴대하고 암암리에 저를 따라다니던 박모가 급기 저를 맞대해서는 도리어 사실을 고백하고 청죄를 한 일까지 있었던 고로 우직한 저의 생각에는 단군한배의 피를 가진 놈이면 왜적의 개질을 하는 놈이라도 나를 해하지 못하리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자신을 너무 강하게 가졌던 까닭에 이번에 변을 당한 것이라고 비평할 사람이 없지도 아니할 듯하나 그렇다고 해서 저는 과거의 신념을 착오라고 뉘우치지도 아니하며 더구나 앞으로 그것을 고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변을 당한 후에 동지들은 물론 중국 측에서도 최고령수 이하 지방장관들이 과분한 우대를 하여 주었습니다. 또 그들은 저의 안전을 위하여 삼사삭 동안 당지를 떠나서 일체를 불문하고 비밀히 휴양하라고 권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사한 이때에 내외정세의 절박한 것과 각지 동포의 촉망을 저버릴 수 없어서 이것을 완사하였습니다. 저는 차라리 약한 몸으로 계속 분투하다가 여생을 마칠지언정 구구한 잔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양심에 고통을 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번 변을 인하여 저의 심경에 하등의 영향이 없다는 것은 위에도 약진하였거니와 다만 희생된 동지에게 대하여 차마 못하는 정이 영원히 사라질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지에게 대하여 자신의 덕이 박함으로써 너무 큰 우려를 끼친 것이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죽은 동지를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 그와 함께 경영하는 사업을 완성하는데 있고 살아있는 동지들에게 사과하는 방법도 우리의 사업을 위하여 배전노력하는데 있다는 것을 각오한 저는 앞으로 오직 이 길만 향하여 더욱 매진하겠나이다. 동지 여러분, 조국광복을 위하여 분투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공통한 문제니 다시 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이것을 신속히 완성하는 첩경은 오직 전민족적 대동단결에 있다는 것을 수십년내에 누구나 다 잘 인식하고 이것을 실현하기에 애를 써오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러나 그 방법에 착오가 있고 의사에 일치를 얻지 못하여 번번이 실패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민족이 단결하지 못하고 전민족적 사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진리는 진리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에 느낀바 있어 과거의 모든 폐단을 거울하여 비교적 완전한 길을 찾아서 다시 실패없을 통일을 점진적으로 신중히 구해보고자 연구해 낸 것이 곧 광복진선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본래 무슨 진선이라는 것은 두 개 이상의 다른 주의의 단체들이 특정한 공통의 이익을 위하여 분공합작(分工合作)하는 기구(機構)인즉 꼭 같은 주의를 가지고 유일한 목적만을 위하여 공동분투하는 우리 독립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진선을 형성한다는 것은 이론에 맞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비록 일시의 우리의 부득이한 사세로써 그리된 것이나 이 모순되는 현상을 그대로 오래 지지할 수 없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며 겸하여 역사적 교훈과 민중의 요구가 통일을 절망할 뿐 아니라 광복진선 중 원동에 있는 삼단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국국민당)는 작년에 남경에서 함께 떠나서 장사까지 온 뒤에는 오늘까지 한 솥의 밥을 먹고 지내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요, 또 여러 가지 공공한 사업은 벌써부터 일치합작하는 터인즉 한 지방에서 문호(門戶)만 여럿을 벌여놓을 필요가 없이 되었나이다. 그리하여 여러 동지들은 통일을 느끼고 있는 중 수삭 전에 제가 비공식이나마 삼당통일 문제를 공공하게 발론하고 전체가 이에 찬성하여 실현방법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사변 당일에도 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감정도 연락할 겸 저녁을 같이 나누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서광이 비취어올 때에 변은 생긴 것입니다. 이번에 희생된 현동지는 이 통일을 위하여 저와 함께 가장 힘있게 노력하던 건장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비록 한 개의 건장을 잃었지만 더 속히 더 든든한 통일을 완성하는 것으로써 반역자에게 답복하려 합니다. 동지 여러분, 저는 최후에 다시 중복하여 말합니다. 저는 가신 동지를 위로하기 위하여, 광복대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먼저 원동의 삼당통일을 실현하기에 배전노력하겠고 이것을 완성한 뒤에는 첫째 광복진선의 통일, 둘째 해외 한인 전체의 통일, 셋째 한 걸음 더 나가서 전 민족적 대동단결을 완성하기에 잔명을 바치려 하오니 저를 애호하시고 이해하시는 동지 여러분께서도 각각 그 지방에서 먼저 통일을 완성하시고 그 다음에 전민족적 대동단결을 실현하여 천재일시의 좋은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소회는 많사오나 다음 기회로 밀고 동지 여러분의 건전한 분투가 있기만 주소로 비나이다.

    2 임정 재정 지원에 관한 전보

    우선 이렇게 서신을 통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합니다. 한국임시정부의 기타 금액 관련 사항은 공개할 수 있지만, 김구(金九) 주석님의 활동비 관련 사항은 절대 기밀로 해주십시오. 1. 혁명동지의 일시적인 어려움을 해결. 2. 비밀리에 전구(戰區)및 한국 활동 지역에 사람을 파견 조사 결과, 상술된 내용은 필수 사항이고 이에 관한 비용은 이미 받은 지 오래지만 현재 물가 상승으로 지원 금액을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수현(壽賢) 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성사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3 한국임시정부 활동비 지급에 관한 장개석 전보

    8월 29일 유(30지)기2365호(서류번호), 9월 1일 특7391호(서류번호)의 보고내용을 모두 잘 알았습니다. 한국 임시정부의 활동경비로 모두 1억원을 발급하며 먼저 5천만원을 발급하십시오. 재정부장에게 지급하도록 명령 내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통지하시기 바랍니다.

    4 임시정부 환국비용 지급에 대한 장개석 전보

    10월 15일 유(30지)기2859호 문서의 한국임시정부에 경비를 지급할 것을 요구한 사항에 관하여 이미 1억 원을 지급하도록 허가하였습니다. 마(1)부참(2)(서류명, 번호) 공문을 통하여 5천만 원을 지급하였으며 추가로 5천만 원과 20만 달러를 지급하시고 한국임시정부에 통지하시기 바랍니다.

    5 임정요인 환국에 대한 왕세걸의 전보

    중앙당부(黨部) 비서처에 올립니다. 중경에 있는 한국 혁명지도자들의 환국사업에 협력하여 한국의 독립사업을 이롭게 하라는 문건에 관하여 얼마 전에 귀처(貴處)에서 서한으로 보내온 한국임시정부 김구(金九) 주석의 급히 환국하여야 할 29명의 명단에 의거하여 즉시 미 대사관에 가서 환국수속과 운송사항에 대해 교섭하였으며 미대사관의 10월 8일 제33호 각서에 따라 처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중경에 있는 한국 인사들이 환국하는데 관한 사항에 관하여 중앙당부 부장이 올해 10월 28일에 보내온 맥아더(麥克阿瑟) 장군에게 한국 인사들의 입국을 허락할 것을 전보로 요청하여 줄 것을 요구한 문건을 잘 보았으며 곧 우리나라 육군당국에 내용대로 처리하게 하였고 맥아더(麥克阿瑟) 장군은 이들의 입국을 허락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이들이 하루빨리 한국에 도착하기를 희망하기에 중국작전구역 미군총부는 그들이 상해에 도착한 즉시 방법을 찾아서 그들로 하여금 신속히 환국하게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 인사들에게 전달하고 내용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한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 일행 29명이 이미 11월 5일에 비행기편으로 중경으로부터 상해로 가서 환국 시켜 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개석(蔣介石) 위원장님께 보고 올리고 군사위원회 관공서와 선전부(宣傳部)에 서한으로 알렸으며 귀처에서 김구 (金九)일행에게 직접 상해의 미군당국에 가서 비행기로 운송하는 사항을 교섭할 것을 전보로 통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임시정부에서 LA에 보낸 안창호 체포 전문

    전보왔소. 일남두날 법인만 민단장 리유필 잡으러 갔으나 (TYENPOATSO ILNADUNNAL BUPINMAN MINDANJANG LIUIL JAPURU GATSUNA) 리없고 도산가타 잡혔소 법인은 누구임과 종국 주김을 (LIUPGO DOSANKATTA JAPHYETSO BUPINNUN NUKUIMKOA JOONGKOOK JUKIMUL) 알고도 왜에게 넘기었소. 처음일이오 왜와 같이 한인집 대수색 (ALKODO OAIEIKEI NUMKYETSO CHUMILIO OAIOAGACHI HANINJIP DASUSAK) 아히까지 십구인 잡혔소. 부인도구다 정부무사 미포무규에 (AHIGAJI SIPGUIN JAPHYETSO BUINDOGUTA JUNGPUMUSA MIPOMUKUEI) 전보하라 고포고 (TYENPOHARA KOPOGO)

    7 김구가 이승만에게 보낸 편지

    雩南丈回鑒 日昨에 玆函을 付飛이옵더니 今日 寵信을 仰讀하오니 더욱 戰亂 中에 避棄하지 않으심을 感中하옵는 바 簡單하신 幾句의 聖敎가 足히 昏衢의 燭光이 피는줄 深覺하겠나이다. 今次 愚第가 提唱한 光復 조직에도 許多 人士가 打成一片의 主張이 있었으나 中央機構를 造成하면 在前臨政의 舊劇을 다시 演出할 憂慮에서 例套統一의 榮靈을 버리고 將來 眞正 統一의 實現을 目標로 아직은 純一한 民族運動 團體들의 人才와 物力을 合하여 共通된 事業을 進行하자는 것이 歸一되어 外交 財政 特務는 弟가 擔任(하고) 柳東說(유동열), 李靑天(이청천), 曺成煥(조성환), 玄益哲(현익철) 等은 軍事 趙素仰(조소앙), 洪冕熙(홍면희), 趙藕泉(조우천) 等이 理論宣傳을 擔任하여 和冲共濟하여 能力대로는 誠實하게들 일하나이다. 從後로도 統一問題가 休息하지않고 各 團體에서 나올터인데 遠東은 難事가 아니오나 關●幾個團體는 自治性이 富한 까닭에 統合은 容易하지 않다는 認識이 깊어가지고 있습니다. 今此 寵敎에 弟心深慕되는 바는 마음맞는 幾人이고 뭉쳐서 實際 方面으로 勇進하여 世界를 驚動할 事業에 着眼하라신 敎訓에 對하여 弟는 準備한 바 計劃과 目的이 있는데 某方의 援助로 普通 事業은 進行하오나 絶對秘密에 屬한 金錢이 아니면 做事爲難합니다. 慘無人道한 倭敵을 懲創하는데 機密이 쓸 阿賭를 先生께서 周旋하실수 있는 限度대로 設力하시오면 民族的으로 光榮될 事業을 成功할 自信이있으므로 謹稟하옵고 다시금 道體彊和하심 祝하며 白凡 弟謹上 十月 一日 夜 一切 通信은 南京으로

    8 중국측에서 이승만 등에게 보낸 편지

    이범석(李范奭) 회답 41년 4월 17일

    9 나석주가 김구에게 보낸 편지

    10 최흥식이 김구에게 보낸 편지

    郭閠(정윤) 先生 台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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