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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시보 : 1944-04-15 ~ 194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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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시보 : 1944 년 04 월 15 일 기사 27 건

    번호 신문명 기사제목 기사내용
    1 북미시보 연합위원회와 시국문제

    대관절 이름이 재미 한국연합이라는 간판을 들고 신성한 독립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을 보는 오인은 한국의 一분자인 이상 이것을 양심상 묵과할 수 없어 이미 탈로된 사실에 대하여 만천하 독자로 더불어 이를 비판코자 하노라.
    四월 十三일 발행 신한민보 사설 가운데 말하기를 四월 二일로 八일까지 『七일간 전체 위원회의 결과는 성공이라고 본다』고 하였으니 위원회의 결과가 과연 성공인가? 그 성공이 무엇인지 오인은 도무지 알지 못할 언론이다. 더욱이 이번 회의결과를 보라 모처럼 참가하였던 민족혁명당과 학생회는 워싱턴 사무소 문제로 탈퇴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성공일까? 더욱 국민회측 총 간부 중에서도 절대로 이를 항의하다가 마침내 대충돌이 일어난 불상사까지 생겼음이랴! 그뿐 아니라 또 말하기를 『민족혁명당과 학생 총회를 연합회에 참가케한 것은 재미 한족연합회의 공고와 해외 한인의 통일을 성취함이라고 보며 축하할 일이다』하였으니 옳다 혁명당과 학생회가 연합회에 참가한 것은 연합회의 자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공고하리라고 볼 수 있었겠지마는 기름과 물이 어찌 합하며 어두움과 빛이 어찌 섞이랴 불과 합석한지 일주일에 서로 갈라지고 말았으니 신한민보는 이것을 축하할 일이라고 보는가? 더욱이 졸도할 일은 『해외 한인의 통일을 성취함이라고』 하였으니 미·포(미국·하와이)에 있는 정치단체 중에 가장 연조가 높고 굴지하는 동지회는 하와이서부터 왜 갈렸으며 북미에 있는 동지회 총회는 카이로선언 후에 광복대사를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 연합회 집행부에 악수키를 무차 교섭하였거늘 억하심사로 동지회 참가를 거절하여 놓고 무슨 염치로 해외 한인의 통일을 성취함이라는 사실위반의 사기적 언사로 민심을 유혹하랴!

    2 북미시보 임시정부 내각 강화문제

    三척동자라도 내각 강화를 불원할 한인이 있으랴마는 불행히 이론과 실제가 달라서 입으로 떠들기는 쉬어도 실행은 쉽지 못한 일이다.
    오늘날 이 전시에 있어서 더욱 필요한 만큼 내각의 강화를 절실히 느끼며 간절하다면 우리의 긴급히 개혁할 일이 무엇일까?
    한곳에 서양 노인이 사는데 평소에는 의복이나 몸가짐을 함부로 지내다가도 자기 아들을 보러 갈때는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가거늘 그 이유를 물은즉 그 노인이 정중하게 대답하기를 『여보시오 내 아들을 아비 되는 나부터 존대치 아니하면 누가 하겠소』하였다고 하며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집 늙은이를 잘 접대함으로 남의 늙은이까지 존경하라 하셨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국가대사를 맡아 보는 영도자들을 좀 더 존경하고 신임하여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 인도자를 우리가 푸대접하고 불신임하면서 어찌 외국인더러 그들을 신임하며 존경하며 인정하기를 바라랴!
    어느 나라 인도자를 물론하고 각 사람의 마음을 다 맞출 수는 없는 것이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인도 매인 열지는 못한다고 하셨다. 현금 우리 내각의 영도자 여러분인들 어찌 우리를 다 만족케 할 수 있으랴! 항자 부자유한 남의 나라에서 인물과 재력이 간핍한 경우에 있는 그 난국을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아니할까?
    그 뿐만아니라.
    누가 김구 내각을 악하게 만드는가 이번 연합회 석상에서 김호 씨가 발표한 말 가운데 이러한 말이 있다. 『김호‐이것은 내가 원동에서 받은 소식인데 노골적으로 지금 내놓는다. 본래 임정에서 중국정부에 일천만원 보증금을 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정부로서는 백만원 허가를 하였다. 그런 후 몇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중국정부에 청원하기를 그 돈 백만원 중에서 四十만원은 임정으로 三十만원은 독립당으로 또 三十만원은 혁명당으로 갈라 달라고 하였다한다. 그것은 그 후에 알고 보니 김약산, 김규식 씨 등이 가서 그렇게 청한 것 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또 그 돈도 중국정부에서 내어주지 아니하였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임정 주석으로 있는 당국자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으랴! 아무리 흔천동지하는 대정치가가 당국하였다 할지라도 그 뒤를 받들지 아니하면 성공키는 어려울 것이다.
    민족혁명당 대표 김강 씨가 묻기를 『미주 집행부와 하와이 의사부는 서로 선전이 다르다. 신한민보를 보면 미주에서는 신성불가침의 임시정부 봉대요 혁명당에서는 임정에 불평을 가진다고 해서 좌경이니 우경이니 하고 떠드니 하와이 의사부는 이것을 환영하는가』하고 물은즉 김호 씨가 대답하기를『신한민보에 기재된 임시정부를 절대 봉대라 한것은 잘못된 말이고 또 있다면 신한민보에 문의해 볼 것이다. 여기서는 문제 삼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을 보면 연합회의 임정 봉대라는 것이 어느정도에 있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을 뿐더러 하와이 대표 김원용 씨가 보고하기를 임시정부에 정신적 보조는 작년 十一월부터 정지했으나 독립금은 十二월까지 보냈다고 하니 이와같이 정부를 박대하면서 내각을 비난하는 것은 무리할 뿐 아니라 재미 한족의 역사적 수치를 천추만대에 남기는 것이다.
    이뿐이랴 김원용 씨가 말하는 중에 이러한 불경의 언사를 발한 일이 있다. 『김원용‐임정에 대하여는 처치하기가 쉬울 줄 안다. 돈을 아니 보내주어 밥을 굶게되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회석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났듯이 한 말이므로 누구나 귀 있는 사람이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에 대하여서는 신한민보 四월 二十일호 제一면에 당자 김원용 씨가 아니했다고 발명하였다. 본인의 말과 같지 아니하였다고 가정한다 할지라도 년내로 내려오는 연합회 정책이 여기에 있음을 어찌하랴?
    실지로 예를 들면 작년 一월에 미주에서 민중대회가 왜 일어났나 연합회가 워싱턴 외교 위원부에 돈을 아니 보냄으로 외교위원부가 밥을 굶게되면 위원부 문을 닫게될 줄로 계획한 사실을 발견한 민중은 분개하여 그때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진충보국하는 일편단심으로 우리 임시정부와 그 기관인 외교 위원부를 절대 후원하는 터이다.

    3 북미시보 하와이 연합회에서 임정부에 보낸 전보의 내용은 무엇인가?

    얼마전에 연합회 하와이 의사부가 임시정부에 보낸 전보의 일부분을 들어보면『ㅇㅇㅇ정부는 연합회로서 보내는 월부금을 단념하라 만일 이승만으로부터 재정상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한번 시험해 보기를 건의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에도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민중의 독립금을 거두어 가지고 돈세력으로 임시정부를 흔드는 것뿐 아니라 외교위원부를 자기네 의사에 맞도록 개혁하려는 계획이라고 본다. 이것이 정부를 강화케 하는 운동이냐 약하게 만드는 운동이냐? 이상에 말한 외에도 정부 당국자에게 또는 국사에 방해되는 일한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거니와 원동은 그만두고 워싱턴에 있는 외교위원부에서도 백방으로 주선하며 무슨 건을 계획하여 놓으면 뒤로 들어가서 방해시키는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 이것을 역사로 일일이 기록을 만들면 여러 권으로 책을 매어 못다 맬 것이다.

    4 북미시보 워싱턴 사무소에 대하여

    지금에 와서는 임시정부나 그 기관인 외교위원회는 어찌 되었든지 一년에 만원이란 거대한 금전을 들여서 워싱턴에 사무소를 내어 가지고 앞으로 진행될 일이 무엇일까를 연합회 역사로 미루어 판단할 수 있으므로 민족혁명당이나 학생회나 기타 각 단체나 개인을 막론하고 절대로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5 북미시보 선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각일 당신께서 一九四四년 三월 三十일 날 하신 편지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그렇게 조선 사정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한 줄은 천만 뜻밖입니다. 더욱이 『스타‐ 뿔레틴에 낸 나의 기서에 대한 당신의 비평이야 말로 너무나 침소봉대적인 듯합니다. 내 글은 어떤 선교사업을 비평한 것도 아니고 또는 조선 갔던 선교사들을 다 비난한 것도 아닙니다. 내 글에 밝히 언명한 어떤 선교사들이라고 한 것은 조선 민족이 자주독립할 수 없다고 미국 사회에다가 공공연하게 선전하는 선교사들을 말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중대한 조선 독립문제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조선을 사랑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 갔다 온 어떤 미국 선교사들은 최근에 이 전쟁 후에 조선은 어떤 외국에서 기대 감독해야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전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조선 독립 문제에 대하여 이런 물음이 분분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선교사임에 얼마나 도움이 될 줄로 앎니까? 여러 해를 두고 미국 선교사 친구들은 자기네가 조선 교회를 통하여 다우한 조선 인도자들을 양성했다고 미국 사회에다가 늘 자랑을 해왔습니다. 조선인 된 우리들은 미국 선교사들이 교회를 통하여 자주독립할 만한 인도자들을 많이 양성한 것을 그전에도 감사히 생각하였고 지금까지도 감사해옵니다. 조선 민족이 자주독립할 수 있다는 것은 조선 감리교회나 조선 장로교회에서 자주독립한 것을 보아도 잘 알 것 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조선에서 나고 또한 사역까지 하던 어떤 선교사들이 전쟁후의 조선은 어떤 나라든지 지배통치를 해야 하겠다고 공중암에서 말을 해서 미국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 민족은 자치할 능력과 자격이 없는것 모양으로 잘못 생각하도록 음해를 했던 선교사들이 남들이 애써서 조선 교회를 통하여 다수한 지도자를 양성해 도왔다고 잘 선전해 놓은 것을 부인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의기양양해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조선을 사랑하는 자라면 정책을 좌우하고 만들어 내는 미국인 사회에다가 전쟁후의 조선은 완전 독립하는 것보다는 상전을 가는것이 좋겠다고 추천하고 선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자유를 갖는 것은 자유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절반쯤 같은 자유라는 생각에는 분명히 누구에게 부속되고 종살이 한다는 뜻이 포함한 까닭입니다.
    둘째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물론 전후 조선은 이곳 친선국 이웃나라에서 엿볼 수 있는 물질적 원조는 다 얻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정상 또는 군사상 원조를 얻는 것도 종이 상전에게 얻는 것처럼 얻을 것이 아니라 같은 독립국가의 자격과 입장에서 얻을 것을 확언합니다. 물론 신조선을 건설하는 데는 정치, 군사, 재정, 기타 같은 것들은 미국에서 많이 고민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언하는 것은 우리의 상전으로 모셔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한 친구로서 고민해 갈 것 입니다. 당신이 전쟁 후 조선을 미국에서 얼마동안 군사력으로 보호해야 하겠다고 하는 생각이야 말로 정말로 미국이 전쟁하는 목적을 잘못 전합니다. 대관절 군사적 보호라는 의미가 미국에서 이 전쟁 후에 조선을 군사적으로 점령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미국에서 四五十만 명의 미국 군사를 조선에다 보내서 조선에 외적 침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리스를 통해서 급물을 얻어가는 것을 당신이 군사적 보호라고 야단하지 않을 터이지요.
    하나님 맙소사 만일 당신의 군사적 보호라는 말이 전후 조선을 미국에서 군사적 점령을 해야 한다는 것이면 당신도 역시 조선의 자유독립을 원치 않는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조선 독립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파괴적이며 유해한 것입니다.
    대관절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싸웁니까? 우리 연합국에서 또 한번 제국주의 전쟁을 하는 줄 압니까? 당신이 잘 기억하실 것과 같이 제一차 세계대전 이후에 구라파(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 핀란드, 파란(폴란드) 같은 여러 소약국이 새로 건설되었습니다. 어떤 나라의 군사적 보호를 받지 않아도 이 여러 소약 신국가들은 제一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각각 독립자주하는 국가로써 四대 자유를 잘 누렸습니다. 전후 조선을 미국에서 수십년 군사적 보호를 해야 하겠다는 당신의 생각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루스벨트 대통령께서 이미 선포한 전쟁 목적을 여지 없이 반대합니다. 한 나라가 남의 나라의 군사 보호를 받는 때는 망하는 법입니다. 전후 조선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상 점령을 절대로 원치 않을 것 입니다.
    끝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한번이라도 조선에서 十一월 달에 조선인이 자기네 대표를 선거하여 면이나 군이나 도회로 보내려고 투표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우리 동리에서 우리 형제들이 면협의원을 자기네 뜻대로 투표 선거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一九二0년 十一월에 최초의 선거가 실시된 후로 조선의 법률을 여러 번 개정하여 지금에는 면협의회를 제외하고는 군, 부, 도회는 중요한 제정과 법규를 토의 제정하는 행정급 입법기관으로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지방자치로써 조선 민족이 절대로 만족한 것은 아닙니다 마는 누구나 조선에서 一종의 자치제를 실시해오지 않았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 내말을 못듣는다면 당신이 함부로 조선 민족이 자치할 수 있다고 일본제국 주의자들까지 공식 발표한 말을 一九三六년 조선행정보고에서 인용하였곤 합니다. 一九二○년에 지방자치의 제一보로써 실시해온 이 자치제는 十五년 동안이나 사용해 왔는데 관민안에 점차로 자치의 경험을 얻게 하였다』운운하였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바 조선은 일본인 상전의 절제대로 민의를 대표하는 대표를 선거하지 못했다고 한 것은 一九三七년에 일본군들이 세계정복을 하려고 미처 날뛴 이후를 가리켜 한말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일본제국 주의자들까지 인증하는 十八년 동안이나 하여오는 지방자치의 엄연한 사실은 부인치 못할 것입니다.
    조선 순사수호에 대하여는 태평양 사정 一九四二년 三월호를 참조하시오. 물론 나도 당신의 말한 바와 같이 제동족에게 짐승처럼 잔인하고 학대한 순사들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 자들은 마땅히 조사하여 엄벌에 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조선인 순검들이 다 잔인무도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기는 그 중에는 당신과 나와 마찬가지로 인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들은 구복이 원수인지라 제 처자를 먹어 살리기 위하여 억울한 순사 노릇을 한자들도 있는 줄 앎니다.
    당신은 아마 그런 순사들까지 일륜적으로 도살을 해야 한다고는 안할 듯합니다. 요컨데 문제는 우리의 독립 신정부가 경성에 들어 앉은 다음에는 잔인무도한 행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제하고는 다시 잘 지도하여 국내외 치안유지를 해야 할 것 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특히 말하는 것은 전후 조선을 미국에서 군사적으로 점령해야 한다고 선교사들이 주장하고 선전할 때는 조선 선교사업은 위험케 될 것입니다. 조선 선교사업의 장래는 지금부터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 갔던 미국 선교사들의 선행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조선을 사랑하고 또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조선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애를 써야 합니다.
    一九四四년 四월 七일
    가와이섬(카우아이섬) 힐로에서

    6 북미시보 대한인부인회 규약

    제一조 명칭
    본회의 명칭은 대한인부인회라 칭함.
    제二조 목적
    본회의 목적은 대한민족의 자유와 국가의 독립을 위하여 성충으로 후원하며 부녀사회의 구호와 계도를 목적함.
    제三조 위치
    본회 총부의 위치는 다수회원이 집중되는 곳에 치함.
    제四조 회원
    본회의 목적을 찬성하는 대한인 十八세 이상의 부녀로 조직함.
    제五조 기관
    본회의 기관은 총부(각 지방회에서 二인씩 선출한 대표로 조직함)와 지방회(회원 五인 이상이 모이는 곳에 설치됨)의 양기관으로 조직함.
    제六조 임원
    ㄱ. 총부에는 회장, 부회장, 서기, 재무 등 四인 임원을 선임함.
    ㄴ. 지방회에는 회장, 서기, 재무 등 三인 임원을 선임하되 임기는 만 一개 년으로 정함.
    제七조 재정
    본회의 재정은 아래와 같이 정하고 ●●● 수입지출을 보고토록함.
    ㄱ. 입회금 (입회시에 一원을 납입함)
    ㄴ. 월례금 (매삭 二十五전씩 납입함)
    ㄷ. 출연금 (특별 사정에 의하여 공결로써 일반인사에게 특연금으로 수납함)
    ㄹ. 찬조금 (본회를 찬성하는 인사의 찬성금으로 수납함)
    제八조 회집
    본회의 회집은 아래와 같이 정함.
    ㄱ. 대표회
    대표회는 각 지방에서 선출한 대표로 성립하여 본회의 입법권을 행사하되 一년 一차의 경기와 사정에 의하여 특별 대표회를 소집함.
    ㄴ. 총 임원회
    총부의 一체 사무진행을 위하여 매월 一차에 정기와 시의에 좇아 임시회로 회장이 소집함.
    ㄷ. 지방회
    지방 형편에 좇아 지방회장이 그 지방회원 전체를 소집함.
    ㄹ. 지방임원회
    지방회 사무를 위하여 매월 一차의 정기와 시의를 좇아 임시로 회장이 소집함.
    제九조 부칙
    본회 규약의 증감 변경은 대표회에서 三분二 투표로 결정함.

    7 북미시보 독립금

    김창인 十五원
    정흥성 五원
    정흔용 十원
    오충규 五원
    김영근 五원
    김문희 五원
    김달로 五원
    송천회 二十원
    김창규 二十五원
    김규용 五원
    이화실 五원
    이동운 十원
    전재연 五원
    박영택 五원
    노하운 五원
    김병모 五원
    신문재 五원
    박해수 五원
    김춘선 五원
    박호근 五원
    박금순 五원
    김성대 五원
    김영근 五원
    김문희 五원
    김성대 五원
    정흥봉 五원
    장기영 五원
    송형두 五원
    이홍섭 五원
    전개업 五원
    강판석 五원
    송천희 十원
    위영민 十원
    김영선 十원
    장원국 十五원
    장태순 十五원
    한택선 二十원
    김승제 五十원
    심정록 四十원
    안어진 六원
    최용진 十원
    임성오 五원
    김원 二원
    남궁염 五원
    남궁염 부인 五원
    조명호 二원
    이상진 五원
    남정헌 十원
    김홍기 十원
    강인명 十원
    전명운 五원
    김노라 五원
    김재신 五원
    전진영 十원
    윤액기스 五원
    전진영 五원
    임한규 十원
    김재심 五원
    현정렴 二十원
    노재호 三十원
    이범녕 五원
    송헌영 十원

    8 북미시보 미국 해군 중장 낙스 씨 별세

    四월 二十八일 화부(워싱턴)전보에 의하면 전세계의 제一 강대한 해군의 두령되는 해군 총장 낙쓰 씨는 오늘 심장병으로 갑자기 별세하였는데 씨는 당년 七十의 노경이라 씨의 별세에 대하여 현임 해군 부총장 포레스탈 씨가 전세계에 산재한 해군에게 공포하는 동시에 즉시 임시총장이 되었다더라.

    9 북미시보 한인으로 처음되는 광영의 임명

    미주 아이다호에 거류하는 홍재성 씨 급 동부인의 장자 성낙 군은 당년 二十五세의 청년인데 텍사스에 있는 공군 항공대에서 비행술을 졸업한 후 항공 소위로 임명된 바 이 박사의 통신에 의하면 한인으로서 미국 항공대에 중폭격기 조종사로 임명되기는 홍 소위가 처음되는 광영이라고 하며 씨는 방금 캘로리나에서 근무 중이나 불원간 바다를 건너 전선으로 떠날터이라더라.

    10 북미시보 공군참위 정운수씨 나성(로스앤젤레스) 심방

    워싱턴 외교위원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던 정 참위는 중가주(중부캘리포니아) 푸래스노에 있는 비행 영문에 근무차로 워싱턴을 떠나 임지로 가는 도중 사월 十팔일에 나성(로스앤젤레스)을 심방하여 수일간 체류하며 동지와 친우를 만나 재미있게 지낸 후 동 二十일에는 동지회 북미총회 임원 제씨와 시내에 있는 청찬관 조엔루에서 만찬을 나누고 二十一일에 중가주(중부캘리포니아)에 있는 비행 영문으로 떠나 갔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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