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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한선교사보고문건

    재한선교사보고문건에 대한 전체 53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15-10-25발신자: 연합장로교 북미해외선교위원회(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발신주소: 북부 15번가 200번지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친애하는 브라운(Brown) 박사님,카이로 대학교의 제안으로 최근에 이집트 여행을 하는 동안 책상 위에 쌓여 있었던 많은 편지들을 지난주에서야 대강이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박사님께서 고마쓰(Komatsu) 각하께 쓴 편지도 읽었으며, 저로서는 박사님께서 훌륭한 논법과 값진 항의를 펼쳐 보이신 데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박사님이 하신 일이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또는 다른 나라들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여졌을 때 우리의 항변의 토대가 되는 모델이기 때문에 값지다는 것입니다. 박사님께서 그와 같이 하나도 빼지 않고 또박또박 요점을 쓰시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 대해 제가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안녕히 계십시오.와트슨(C. R. Watson)

    2 젠스 웨스텐가드(Jens I. Westengard)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15-10-11AJB/B발신자: 존경하는 젠스 웨스텐가드(Jens I. Westengard) 씨수신자: 존경하는 젠스 웨스텐가드(Jens I. Westengard) 씨수신주소: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콩코드가 30번지친애하는 웨스텐가드(Westengard) 씨,9월 10일에 보낸 내 편지에 대한 당신의 9일자 답장이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난 미네아폴리스주 시카고와 다른 서부 도시에서 강연 약속이 있어 막 떠나려 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11월 1일경에 돌아올 때까지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집행위원회(Executive Council)나 이사회(the Board)에 자문을 구할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스피어(Spear) 박사가 11월 19일에 미국에 도착할 예정이고, 또 당신이 편지 끝에서 모든 행동을 연기하라고 충고했기 때문에, 호니브룩(Hornibrook) 씨가 스피어(Spear) 박사의 제안에 어떤 답변을 하는 지 알 때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스피어(Spear) 박사가 올 때까지 현재 상태로 그냥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없는 동안 호니브룩(Hornibrook) 씨의 답장에 대한 스피어(Spear) 박사의 의견이 도착한다면, 돌아오는 즉시 당신과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쁠 것입니다.그동안은 스피어(Spear) 박사가 그에게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올 것이기 때문에 스피어(Spear) 박사와 만날 수가 없습니다.이 문제에 대해 당신이 친절하게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안녕히 계십시오.브라운(Brown) 박사는 이 편지에 서명하기 전에 떠나야 했다.

    3 브라운(Brown)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마운트 홀리오크(Mount Holyoke) 대학발신주소: 매사추세츠주 사우스 하들리(South Hadley)발신일: 1915-06-29발신자: 신학박사 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목사수신자: 신학박사 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목사수신주소: 메디슨(Medison) 애버뉴 25번지뉴욕시존경하는 브라운(Brown) 박사님,한국에서의 교육과 종교의 분리에 관한 고마쓰(Komtsu) 씨에게 보낸 편지 사본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편지를 매우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마도 불필요하겠지만, 저는 당신의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합니다. 저는 일본 정부의 조치를 전해듣고는 놀란 한편 걱정이 되었으며, 일본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안녕히 계십시오.(서명) 메리 울리(Mary Woolley)

    4 마운트 홀리오크(Mount Holyoke) 대학 메리 울리(Mary Woolley) 총장이 브라운(Brown) 박사에게 보낸 편지 사본

    발신일: 1915-06-29답장: 고마쓰(Komatsu) 편지한국에서의 교육과 종교의 분리에 관한 고마쓰(Komtsu) 씨에게 보낸 편지 사본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편지를 매우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으 s아마도 불필요하겠지만, 저는 당신의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합니다. 저는 일본 정부의 조치를 전해듣고는 놀란 한편 걱정이 되었으며, 일본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

    5 고마쓰(Komatsu)가 조선총독부(Government General of Chosen)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조선총독부(Government General of Chosen)발신주소: 경성(Keijo) 발신일: 1915-11-04발신자: 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박사수신자: 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박사수신자: 해외선교이사회(Board of Foreign Mission) 의장수신주소: 뉴욕안녕하십니까,교육 문제에 관련하여 6월 16일에 보내주신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장문의 편지를 준비하여 우편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만, 9월 17일 이곳 서울에서 박사님의 동료인 로버트 E. 스피어(Robert E. Speer) 박사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그분과 교육과 종교의 분리라는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고, 또 그 문제를 배태하고 있는 조선에서의 실제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스피어(Speer) 박사는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사님께서 가까운 장래에 그 문제에 대해 스피어 박사로부터 들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저는 박사님의 질문에 하나씩 답변하는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에서 언급한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박사님의 제안을 순서에 따라 오해가 없도록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승낙하신다면 예의를 차리지 않고 그 문제에 관해 제가 갖고 있는 견해에 따라 박사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박사님의 제안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하여 제가 스피어 박사에게 말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은 피하기로 하겠습니다.저는 우선 일본 제국정부가 조선에서 확정한 행정 정책은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정부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취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양 국민간의 역사적이고 인종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문명 종족에서 뒤쳐진 한국 민족을 원조하고 안내하고 향상시키는 것, 그들을 오직 선량하고 지적인 민족으로 뿐 아니라 이름과 실생활 모두에서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과업입니다만, 두 민족의 지속적인 복지와 행복을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수행해야 할 과업입니다. 이러한 것이 조선총독부의 섭리적인 임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설 학원에 대한 규제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수정안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물질적인 성격을 균등하게 향상시키는 한 편 대중적인 정신을 지도하고 통일시킴으로써 동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해진 하나의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규제에서는 정부든 공립 혹은 사립 기관이든 국민 (일반)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학교는 정부가 확정한 교육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조치를 종교 활동에 대한 제한을 가할 목적 중의 하나로 여기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러한 가정보다 진실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사설 학교에 대한 규제는, 그 자체로 자명하게 드러나지만, 국민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설 학교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물론 예를 들어 부기나 속기나 외국어 등과 같이 특정한 과목이나 학습 주제만을 가르치는 직업 학교들은 예외입니다. 조선에는 1,200개 이상의 사설 학교가 있으며, 그 중에서 소위 미션 스쿨은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션 스쿨은 요건에 부응하기 위해 10년의 유예 기간을 받는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이번 규제의 주된 목적은 미션 스쿨과는 달리 한국인 사립 학교를 통제하고 향상시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종교적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닌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저로서는 그러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하겠습니다.문제가 되고 있는 조치들은 종교적인 전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총독부는 프랑스가 했던 것처럼 종교 단체가 교육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총독부는 교회와 종교인들이 평범하고 합당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수행하거나 개인들을 사적으로 교육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나 종교인들이 국민 교육을 담당하려 하는 경우에는 이미 설정된 교육 규제를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합당한 사람들이나 사사로운 개인들이 동일한 일을 담당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고유한 종교적 한계선을 넘어서서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러한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통제는 정부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전의 편지에서, 박사님 나라의 공립 학교에서는 출석한 전체 학생 수의 9/10에게 종교 교육이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이 사실은 박사님이 편지에서 인용한 뉴욕 대학교의 엘머 E. 브라운(Elmer E. Brown) 학장이 증언한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종교와 교육을 분리하는 것을 오랫동안 국민 교육의 원리로 삼아왔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박사님의 나라의 교육 환경에 대해 언급한 주된 이유는 조선에서 채택된 교육 정책이 새로운 발명품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사님은 미국에서는 사립 학교에 종교에 관해서는 어떠한 제약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원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사실의 문제입니다. 제게는 전체 학생 수의 1/10만 다니고 있는 미국 사립 학교에는 종교에 관해 어떠한 제약도 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일반적인 규율로써 성서 교육을 제외한 정규 커리큘럼 아래에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님의 나라에서 달성한 발전된 단계에 대해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은 박사님의 나라처럼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정부의 임무가 더 단순하고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저는 조선의 일부 선교단체들이 일본에서 추구된 것과 동일한 교육정책이 조선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며 모국의 미션 스쿨에 확장된 것과 같은 동일한 특권이 한반도의 유사한 기관에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듣고 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만, 이러한 의견은 국가의 서로 다른 두 부분에 존재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음으로써 파생된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에는 일반 학교의 학제로 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수백 개의 미션 스쿨이 있지만, 일본에는 그러한 미션 스쿨이 실제로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각 학교들은 중등 학교나 더 높은 학제에 있는 미션 스쿨과의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한 학교의 수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교육 기관이 모두 완비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이러한 학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교육부는 이러한 소수의 학교들이 커리큘럼에 종교를 포함하는 한 중등학교의 이름을 내걸도록 허용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후쓰부(futsu-bu, 중급부)라 부르던 것을 추가쿠부(chugaku-bu, 중등부)로 부르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승인된 것은 오직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정부가 확정한 커리큘럼을 채택한 학교에서는 어떠한 종교도 가르쳐서는 안되며 어떠한 종교적 의식도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부 장관의 훈령은 여전히 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곳 조선에서 우리는 그러한 훈령에 입각한 원리를 단순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추가코(chugakko, 중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는 종교를 제외시키라는 요구를 받지 않지만, 실제로 중학교 학년의 교육을 행하고 있는 조선의 모든 학교는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다른 중학교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이러한 조치는 표시가 잘못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이론적으로 올바른 것일 뿐 아니라 조선의 유행을 볼 때도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조선이 일본에서와 같이 동일한 발전 단계를 달성하려면, 그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두 부분의 교육 환경이 서로 너무나 다르므로, 서로 다른 두 부분에 하나의 동일한 시책을 시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제 말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그 오해를 없애기 위해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와 규정된 학습 시간 외에 일요학교나 세미나, 교회에서와 같은 특수 기관에서 또는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성서를 공부하는 것은 완전히 자유입니다. 그러한 것이 개명된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제 의견입니다.저로서는 박사님께서 환경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총독부가 규제 시행에 관한 10년의 유예를 기존의 사설 학교에까지 확장했다는 점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확실히 특별한 특권이라 인정하면서도 지정된 시기가 끝날 즈음이 되면 미션 스쿨들은 일부 과중한 제약 아래에서 어렵게 학교를 운영하거나 학교를 닫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견해는 미션 스쿨 특히 초등 학년을 대상으로 한 미션 스쿨들은 영원히는 아니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번성할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이 그토록 많은 초등학교를 조선에 설립한 이유가 이전 한국 정부가 초기에 교육에 매우 미미한 관심만을 보여왔고, 그래서 그들이 종교적 전파 사업 이외에도 계층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교육 사업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후로 시대가 변했고, 합병 이후로 조선 총독부가 취한 규제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동화 정책을 수행하려는 목적에서 공립 보통학교의 수가 늘었고, 특수 교육기관들은 점차 정규 교육기관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 초등학교 수준의 일부 미션 스쿨이 있었지만, 제국 정부가 교육 시스템을 완료함으로써 이루어진 발전에 따라 그러한 학교들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은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조선에서의 선교사들에 의한 일반 교육 사업의 담당은 한시적인 편의 사업에 불과할 것이며, 일반 교육 시스템의 완료와 함께 미션 스쿨들은 수적으로 점차 줄어들 것이고 존재 이유도 잃게 될 것입니다. 실지로 합병 이후부터 1914년까지 지난 4년 동안 미션 스쿨의 수는 746개에서 473개로 감소했으며, 매년 줄어드는 비율은 평균 68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향후 6-7년이 지나면 조선에서는 보통 교육을 담당하는 미션 스쿨이 일본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미션 스쿨들이 10년 이후에 시행될 규제 때문에 상당히 다른 입장에 처하게 된 스스로를 발견하리라는 두려움은 전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우리 정부는 전적으로 종교에 무관심하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무시하거나 경시한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 정부는 도덕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종교는 항상 존중해왔습니다. 조선에서도 특히 당국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토지와 가옥에 대해서는 과세 면제 조치와 같은 특권을 종교 단체에 확장했을 분만 아니라 종교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 재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특별한 혜택을 주어왔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종교 사업가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완전한 규제인 것이며, 예전의 규제는 이제부터는 일본인에게만 적용될 것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어떠한 규제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회에 해로움을 끼칠 수도 있는 그러한 종교나 선전 방법을 통제하는 것은 정부의 자기 보호를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합법적인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간단히 말해, 우리 정부는 모든 종교에 대해 불편부당이라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구속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중 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그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교육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서로 다른 태도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 목표가 우리 국민들의 지능과 도덕성을 개발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제국의 존립과 복지에 기여하게 될 그러한 국민 정신을 국민들의 가슴에 깃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 교육에 관한 우리의 정책과 시스템에 관해 절대적인 독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공표하고 외국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 시행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당연히 이전 한국 정부 치세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시작한 교육 사업이 오늘 날 수정되어 현대적인 행정적 조치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계획의 발전 방향과 보조를 맞추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박사님께서 현금의 이러한 변화를 잘 이해하고, 선교사들이 교육에 소모해온 돈과 노동을 그들의 고유한 종교적 전파 영역으로 전환함으로써 정부의 손에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 사업과 정부의 사업은 동일한 목표를 갖게 되어서 서로 부드럽게 나란히 가며 충돌하지 않을 것이고, 박사님이 속한 단체에서 담당해온 조선에서의 선교 사업은 이전보다 더 번성을 구가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안녕히...(서명) 고마쓰(Komatsu)외무부 국장

    6 조선에서 교육과 종교의 분리에 대한 비망록

    작성처: 신학박사 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목사 작성작성일: 1915-12-21조선총독부(Government-General of Chosen) 외무부 국장 고마쓰(Komatsu) 씨가 6월 16일 본인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내온 12월 4일자 편지를 당시 사본으로 만들어 보냈던 것을 다시 편지에 동봉합니다. 당신은 고마쓰(Komatsu) 씨가 편지의 첫째 단락에서 로버트 E. 스피어(Robert E. Speer) 박사가 조선을 방문했던 동안 그 문제에 대해 그와 광범위하게 토론했으며, 내가 “그 문제에 대하여 가까운 장래에 모두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스피어(Speer) 박사는 미국에서 막 돌아왔으며, 물론 당시 면담에서 받은 인상은 따로 보고할 것입니다. 스피어 박사가 받은 일반적인 인상의 대강은 아래와 같이 고마쓰 씨와 대화를 나눈 후 스피어 박사가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 1915년 9월 20일 내게 보낸 편지에 압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우정을 나누는 데 있어 이러한 면담보다 더 만족스러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 의심이 녹아드는 것을 보는 것, 그간 발생해온 문제들을 그들과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공감과 이해의 분위기에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깨달을 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유효한 해결책을 고안한 준비가 완전히 되었음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경험입니다.”내가 현장에서 받은 대부분의 편지들은 상황에 대해 그렇게 고무적인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있지만, 고마쓰(Komatsu) 씨나 고위 관직의 다른 일본인과 사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해본 적이 있는 선교사들 중 극소수만이 이와 동일한 결과를 서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피어 박사나 다른 담당자들과 나눈 고마쓰(Komatsu) 씨의 말은 분명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그러한 경험이라면 어느 누구의 심장이라도 따스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피어 박사가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고, 서울에서 그에게 들었던 우아한 상황에 대한 절차를 우리가 기반으로 할 수 있다면 매우 안심이 될 것이었습니다.하지만 불행하게도, 고마쓰(Komatsu) 씨와 조선총독부 교육국장인 세키야(Sekiya) 씨가 문서로 기록한 성명들은 그들의 대화 기록과 조화를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면담한 일본 관료들의 사적인 언어가 그들이나 그들의 정부를 구속하는 권위 있는 기록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대해 신뢰를 갖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서, 아니면 평범한 법률적 내용이나 고마쓰(Komatsu) 씨나 그의 동료들이 서명까지 했기 때문에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그러한 말들의 보호를 받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서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계의 관리들, 특히 아시아의 관리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을 너무나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환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진의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받기가 쉽습니다. 두 개의 선교단체를 통합한 한 위원회가 83호 법령에 관해 국제문제 및 종교 부처의 국장인 우사미(Usami) 씨와 즐겁고 만족할만한 면담을 마친 후 우사미(Usami) 씨가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망록으로 작성하여 우사미(Usami) 씨의 동의를 받으려고 그에게 제출하자, 그는 “수정해야 할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그가 교정된 사본을 반환했다고는 하지만, 그 사실이 아직 내게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또한 1915년 10월 21일 워싱턴의 국무부에 제출한 370호 공문서에서 발췌한 다음 내용을 눈여겨보십시오. 친절하게도 국무부에서 내게 보내준 것입니다.

    7 도쿄 미국 대사관에서 워싱턴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미국 대사관발신주소: 도쿄 발신일: 1915-10-21수신주소: 370호워싱턴발신자: 국무장관수신자: 국무장관장관님께,제가 워싱턴에 있을 때 조선의 미국 선교 학교들이 조선총독부가 최근에 공포한 개정된 학원 규제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을 방식에 대해 제출한 비망록에 대해 언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규제 사본은 번호를 매기지 않은 1915년 4월 5일자 대사관 우편물에 동봉되었습니다.이 규제가 언급한 비망록으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사립 학교가 그 규제에 순응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립 학교가 순응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교육을 할 자유는 갖게 될 것입니다.법률에 상존하는 해석의 갈등에 관해서도, 제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 문제에 대해 더욱 많은 조사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망록에 나와 있는 발언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결과를 이끌어낼 정도로 간접적이지만 공식적인 자료에 기반한 결정적인 정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저는 보통(일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모든 사립 학교들이 10년 후에는 정부의 규제에 따라야 하고, 학습 시간 중에는 종교를 교육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요건에 대한 예외는 신학대학원, 외국어 학교, 부기 등과 같은 일반 교육이 아닌 특수한 과목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경우에만 인정됩니다.법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마쓰(Komatsu) 씨와 다른 고위 관료들이 그에 관해 권위를 가지고 문서 형식으로 말한 바에 대해, 다음 인용문은 흥미를 줄 것입니다.1915년 3월 24일자로 조선 총독이 발표한 “사립 학교 규제의 개정 및 시행 등에 관한 지침”에서 조선 총독은 관련 지방 당국에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그러한 (사립) 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이 커리큘럼에 포함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적 의식이 수행되도록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 국민의 교육은 종교와는 무관해야 한다. 어떠한 정부도, 제국의 법률과 공문서에 의해 고정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공립 학교나 사립 학교들도 종교적인 교육을 시행하도록 도는 어떠한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하도록 허용되지 못한다. 관련 공무원들은 항상 공포된 성명서를 기억하여 잘못된 곳으로 이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마쓰(Komatsu) 씨는 서울신문 1915년 4월 2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교육과 종교의 분리라는 원리는 조선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고마쓰(Komatsu) 씨는 서울신문 1915년 4월 3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현재 조선에서 기획하여 점차 실시되고 있는 종교와 교육의 분리라는 원리의 실행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어느 누구의 반대나 비판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교육과 종교의 분리라는 이 원칙을 수행하는 것 보다 정부에 시급한 것은 없습니다.”조선총독부 교육부 국장인 데이사부로 세키야(Teisaburo Sekiya) 씨는 나가사끼(Nagasaki)신문 1915년 3월 30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당국자들은 조선의 종교 학교들이 문명과 교육의 발전에 끼친 값진 기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종교 학교들은 조선에서의 현재 교육 상태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에서 보통 산업 및 특수 교육을 수행하는 사립 학교들은 그들의 커리큘럼을 공립 보통 학교나 고등 보통 학교, 또는 공립 특수 학교에 맞게 확정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규제가 허용하는 것과는 다른 교과목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보통 학교나 산업체 학교 또는 특수 학교 등은 이름이나 종류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모든 학교가 규제를 받는 시스템에 순응하도록 요구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학교에서는 종교적인 교육을 제공하거나 종교적인 의식을 준수하는 것이 금지된다.”재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 1915년 8월 7일자에 실린 편지에서는 동일한 관료인 조선총독부 교육부 국장인 데이사부로 세키야(Teisaburo Sekiya) 씨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분명히 언급된다.“얼마 전에 조선 제국 정부의 교육부 수장으로 불리던 작가는 정부 허가를 확보하지 못한 사립 학교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학교 문을 닫을 것이라 답변했습니다. 이런 일은 일본 본토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으며, 어떤 학교들은 정부의 승인 없이 운영을 허가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아주 간단히 조선에서는 다르다고 대답했습니다.”“서울의 신설 대학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문제를 다시 언급하며, 나는 지난주에 서울에 가서 조선총독부의 교육부 수장인 데이사부로 세키야(Teisaburo Sekiya) 씨와 오랫동안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일들 중에서 그는 내게 성서나 종교적인 교육은 신설 대학에서는 허가 받지 못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규제가 시행될 것이고 또 그러한 규제에 다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정부의 허가를 얻지 못한 학교들은 문을 닫아야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일본의 학교들은 정부의 승인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말에 대해 여기서는 다르다고 대답했습니다.”도쿄에서 발행된“관보(The Official Gazette)”1915년 3월 29일자에는 다음 내용을 포함하는 말이 실렸습니다.“한국에 교육 조례를 시행 중인 총독부는 법 규정에 의해 확정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공립 학교와 정부 지원 학교 뿐 아니라 사립 학교도 종교적인 교육을 제공하거나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하도록 허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포했다.시대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고 국가의 교육 시스템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이 법 규정에 의해 규제를 받는 중요한 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어떠한 사립 학교도 자체 커리큘럼에 종교적 교육을 추가하거나 어떠한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도록 허가되지 않는다.“현장의 선교단체들은 규제의 의미와 조선에서 활동 중인 6개의 선교이사회를 대표하는 “연합선교협의회(The Council of Federated Missions)”에 가해진 규제의 효과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9월에 열리는 연례 집회에서 다음 결의안을 채택했다.“조선 총독이 공포한 개정된 1915년 교육 조례가 다른 변화들 중에서도 기독교 교회와 선교단체가 운영하고 자금을 대고 있는 수백 개의 학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립 학교에서 종교적인 교육이나 종교적인 의식을 제외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연방교회이사회(Federal Council)는 국내 신도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이사회 회원인 선교단체들만을 국내에 머물게 하고 학교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된 자금을 기부할 대상을 물색하며 스스로 활동이 마비됨을 느끼며, 기독교 학교들의 문을 완전히 닫으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판단으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우리를 구속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또한 각각 개정된 조례가 기독교 학교의 성서 교육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정부가 부여한 이전의 보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사립 교육기관에서 종교 교육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이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그러므로, 이미 설립된 학교에 부여하는 10년의 준비 아래에서 우리는 기한이 만료되기 전에 상당한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희망 속에서 우리의 학교를 계속 유지할 것이며, 이 조례 규정 아래에서 곧 설립될 신설 학교와 비교하여 최소한 일본 본토와 동일한 조건을 가진 조치가 마련될 것이라 믿는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서울 Y. M. C. A.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는 프랭크 M. 브록크만(Frank M. Brockman) 씨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이러한 결의안에 대한 반대 투표는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회의하는 동안 내내 영혼이 살아 있음을 느끼곤 기뻤습니다. 정부에 대한 충성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협력하자는 희망이 모든 참석자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그래서 항의는 분명했지만 조선에서의 일본의 현존과 일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정신에 의해 촉구되지는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한국 교육재단 이사회(Senate of the Educational Foundation of Chosen)의 간사인 신학박사 제임스 아담스(James Adams) 목사는 1915년 7월 13일 이런 글을 썼습니다.“이 상황이 일본에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신 이 상황은 필연적으로 다릅니다. 일본 본토에서는 교육이 의무가 되어 있는 보통 학교 기간 동안에는 미션 스쿨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선교학교에 대한 정부의 요건은 엄격합니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상급 학교나 학원이나 대학교에서, 학교는 허용된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 학교가 정부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세속화하며 다른 조건에 맞춘다면 다른 학교가 갖지 못하는 어떤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그러나 자체 커리큘럼에 종교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를 갖는 경우에는 학교는 순응할 수도 계속 운영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이 우리의 명치 학원(Meiji Gakuin)이며, 감리교 오오야마 학원(Ooyama Gakuin)인 것입니다. 주어진 선택은 ‘순응하느냐 아니면 도태하느냐’입니다. 여기서 선택으로 주어진 것은 ‘순응하느냐 아니면 문을 닫느냐’입니다. 하나는 허가를 전제로 한 선택이며, 다른 하나는 억압을 전제로 한 선택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선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조건은 일본에서 과거에 있었던 조건보다 더 심각합니다. 선택의 자유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세속화할 것이고 장삿속이 될 것입니다.”우리의 장로교 선교단 집행위원회의 의장인 챨스 E. 샤프(charles E. Sharp) 목사는 1915년 8월 16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정부의 입장을 주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부의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 교육과 종교적 훈련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허가 없이는 학교를 운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학교는 죽어갈 운명에 놓인 것처럼 보입니다.”일본의 진정한 친구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조치에 기꺼이 따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구조를 찾는 경향이 있는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것을 한국에서 단순히 행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의 선교 학교들이 일본에서 심각한 고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서도 고난을 겪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주 반복되는 성명서에서 재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규제는 일본에서 시행 중에 있는 것이라며 현재의 규제를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규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멋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마쓰(Komatsu) 씨는 다음의 솔직한 진술에서 이러한 가정을 실질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저는 조선의 일부 선교단체들이 일본에서 추구된 것과 동일한 교육정책이 조선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며 모국의 미션 스쿨에 확장된 것과 같은 동일한 특권이 한반도의 유사한 기관에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듣고 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만, 이러한 의견은 국가의 서로 다른 두 부분에 존재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음으로써 파생된 것입니다. (...) 일본에서는, 추가코(chugakko, 중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는 종교를 제외시키라는 요구를 받지 않지만, 실제로 중학교 학년의 교육을 행하고 있는 조선의 모든 학교는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다른 중학교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이러한 조치는 표시가 잘못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이론적으로 올바른 것일 뿐 아니라 조선의 유행을 볼 때도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조선이 일본에서와 같이 동일한 발전 단계를 달성하려면, 그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두 부분의 교육 환경이 서로 너무나 다르므로, 서로 다른 두 부분에 하나의 동일한 시책을 시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그러므로 일본인들이 일본의 미션 스쿨을 대하는 태도와 조선의 미션 스쿨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 공정한 평행선을 그을 수 없으며, 일본과 미국의 미션 스쿨들을 차별하는 데 대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내가 6월 16일 고마쓰(Komatsu) 씨에게 보낸 편지 17-18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이 암시했던 이유와 의심할 바 없이 동일합니다. “국제적 고난의 불행한 시기인 지금, 나는 일본 제국 정부가 판이한 민족적 역사를 가진 한 국민을 동화하고 중국 뿐 아니라 유럽의 일부 열강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는 제국의 일부를 점령하려 노력하는 데에 포함된 정치적인 문제들의 특수한 성격을 완연히 인식하고 있습니다.”고마쓰(Komatsu) 씨의 훨씬 더 불길한 진술은 조선총독부가 현재 정책의 결과로써 미션 스쿨들의 폐쇄를 기대하고 희망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마쓰(Komatsu) 씨의 편지 내용 중 다음 문장을 주목하십시오.“조선에서의 선교사들에 의한 일반 교육 사업의 담당은 한시적인 편의 사업에 불과할 것이며, 일반 교육 시스템의 완료와 함께 미션 스쿨들은 수적으로 점차 줄어들 것이고 존재 이유도 잃게 될 것입니다. 실지로 합병 이후부터 1914년까지 지난 4년 동안 미션 스쿨의 수는 746개에서 473개로 감소했으며, 매년 줄어드는 비율은 평균 68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향후 6-7년이 지나면 조선에서는 보통 교육을 담당하는 미션 스쿨이 일본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우리의 교육 목표가 우리 국민들의 지능과 도덕성을 개발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제국의 존립과 복지에 기여하게 될 그러한 국민 정신을 국민들의 가슴에 깃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 교육에 관한 우리의 정책과 시스템에 관해 절대적인 독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공표하고 외국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 시행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당연히 이전 한국 정부 치세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시작한 교육 사업이 오늘 날 수정되어 현대적인 행정적 조치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계획의 발전 방향과 보조를 맞추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박사님께서 현금의 이러한 변화를 잘 이해하고, 선교사들이 교육에 소모해온 돈과 노동을 그들의 고유한 종교적 전파 영역으로 전환함으로써 정부의 손에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이 말은 명백히 미션 스쿨의 소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고마쓰(Komatsu) 씨가 언급하는 감소가 한국의 지방 교구에서 운영하고 후원하는 초등학교이며, 이런 초등학교 중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로서는 부담할 수 없는 추가 비용을 요구한 정부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었음을 추가해야 하겠습니다. 선교단체가 운영하고 현재 우리가 관련되어 있는 학교의 수는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고마쓰(Komatsu) 씨가 서울신문에 기고한 1915년 4월 3일자 기사의 다음 문장은 총독부의 진의를 보다 명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영국이나 독일의 교육 시스템이 미국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의 교육 시스템과 호환되지 않는 외국의 교육 시스템은 조선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짓는 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입니다. 학교의 커리큘럼이 무엇이든 간에, 그 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의 교장과 선생님들의 이상과 개인적인 성격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프랑스는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교사들은 반드시 프랑스인이어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던 것입니다. 교육은 결단코 민족주의적이어야 하며, 세계적인 종교와 섞여서는 안 됩니다. (...) 종교의 전파는 교회의 통제 아래에서만 수행되지만, 교육 사업은 전적으로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 정부는 어느 누구도 국가의 독립 유지와 복지 향상을 위해 담당하는 교육 사업을 간섭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정확히 말하자면, 정부가 종교에 간섭하면 안 되듯이, 교회도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행정과 특히 행정적 일의 일부인 교육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결과는 명백합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재정리라는 단순한 문제이지만, 우리의 선교 기구의 존립에 영향을 주는 문제입니다. 실제로 고마쓰(Komatsu)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저는 이번 조치를 종교 활동에 대한 제한을 가할 목적 중의 하나로 여기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감스러웠습니다. (...) 종교의 자유는 각자와 모두에게 보장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그들의 의도에 비추어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리가 잘린 경우, 만면에 즐거운 미소를 띠면서 그의 보행 능력을 불구로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무례한 위안이 될 것입니다.결론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법령은 법령이 말하는 바와 고마쓰(Komatsu) 씨와 세키야(Sekiya) 씨가 법령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단정적으로 말한 것을 정확하게 의미하고 있습니다.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고마쓰(Komatsu) 씨는 3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와 규정된 학습 시간 외에 일요학교나 세미나, 교회에서와 같은 특수 기관에서 또는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성서를 공부하는 것은 완전히 자유입니다.”장로교 선교사 한 분과 다른 선교회 간사 한 분은 조선총독부와 문제를 일으키거나 우리 학교를 폐쇄하거나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묵인하고 순응하는 것이 좋겠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제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15년 9월 17일, 총독부는 다음과 같은 일반 명령을 한국 전역의 다양한 지방 관리들에게 전달했습니다.사립 학교에서 성서 교육에 관한 지침보통(Futsu), 기술(Jitsugyo) 또는 직업(Semmon) 교육을 가르치는 사립 학교의 교과 과정에 관해 다이쇼(Taisho) 4년에 24호로 발행된 정부의 명령을 보면, 각 학교에서 배우는 정규 교과 과정에 종교 과목을 추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정규 교과 과정에 추가된 선택 과목이란 이름으로 종교와 관련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는 학업의 일부로써 종교적 봉사를 행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반대로 학교 건물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한하지 않는다. 단 학교 수업 이후에 사용되는 한에 있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학업과 종교적 활동을 혼동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학생들이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러한 지침이 당국의 명령으로 전달되었고,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도록 희망되었다.”“다이쇼(Taisho) 4년, 9월 17일”“교육. 1371호 총독.”신학박사 제임스 E. 아담스(james E. Adams) 목사는 해석에 관한 한 신학박사 윌리엄 임브리(William Imbrie) 목사와 가지노수케 이부카(Kajinosuke Ibuka) 교장과 협의하기를 요청하면서 이 명령의 사본 한 부를 도쿄의 신학박사 A. K. 라이사우어(A. K. Reischauer) 목사에게 보냈습니다. 윌리엄 임브리(William Imbrie) 목사는 다른 일들을 언급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11월 22일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통지 정신은 우리에게 확실히 우호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국자들이 교육과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학업의 일부로서 학교 내에서는 아니지만 그들은 종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고 종교적 봉사가 학교와 연계하여 가질 수 있는 타협점을 제안하고 있습니다.”“연방교회이사회나 다른 단체가 보다 명확한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당국에 접근한다면 오해를 살 것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학교에서 지체없이 위에서 언급한대로의 통지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요구를 법규 내에서 따르는 것입니다.”“하루를 예배와 성서에 나와 있는 교육으로 시작하고, 그런 다음에는 약간 휴식을 취한 후 교사와 학생들이 방과후에 다시 모이는 것이 분명히 통지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합당한 말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명령을 잘 해석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현명하고 저명한 분들이 한 말이니 중량감이 있습니다. 그 어떤 책임 있는 정부 관리가 그 점을 서면으로 확인해 줄 것입니까? 그래서 이런 과정을 채택하는 선교사들이 사기 혹은 법률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줄 것입니까? 저는 그것을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그 해석은 있음직한 것이지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훈령에는 특히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그런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규 수업 과정에 추가해서는 안 된다. 정규 수업 과정에 추가된 선택 수업의 이름으로 종교 교육을 하거나, 학업의 일환으로 종교적인 예배 의식을 행해서도 안 된다. 이것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는 학교 건물을 학업의 범위를 넘어서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이것을 학교 사업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정규 수업 과정에서 종교 교육을 하고 이것을 학교 사업과 혼동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학교들을 독특하게 기독교적인 것으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부는 주장합니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철저한 세속화를 학교에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제를 그런 관점에서 정면으로 대처해야 하고 명백한 서면 진술을 우리의 낙관적인 기대와 추측으로써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과 미국의 일부 학교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윤리학"이란 과목에 성경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학교 수업이 법률에 정한 시간에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 시간에 예배 시간을 배치하여 법을 글자 그대로 지킴과 동시에 성경과 기독교를 우리 학교들에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제안의 "윤리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 내가 배웠던 종류의 윤리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기가 아니라면 술책이란 비난을 받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사실상 성경이 산수나 문법과 같은 정도로 윤리학의 교과서에 불과하고, 예수님이 교사이자 소크라테스나 공자처럼 윤리학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우리에게 이를 허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선교 사업의 근본을 포기하는 것인 듯합니다. 우리가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것은 주로 성경이 윤리학 이상의 무엇이고, 예수님이 도덕적 현자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학교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하느님이 계시한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내세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관해 어떤 핑계를 대서도 안 되고, 우리가 영혼으로 피하고자 하는 법의 자구에 대한 복종을 구실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 선교회의 아담스 목사(Rev. Dr. Adams), 감리교의 벡커 씨(Mr. Becker), 캐나다 장로교의 로브 씨(Mr. Robb)로 구성된 교육이사위원회(A committee of the Educational Senate)는 10월 16일에 우사미 씨(Mr. Usami)와 협의를 했고, 그들의 보고서에는 아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 교육을 교과과정에서 선택 과목으로 허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우리는 이것이 학생이나 부모들이 싫어하는 종교 교육을 수용하기를 강요하는 일 없이, 모든 학생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통일된 수업 과정을 학교 특권에 주려는 정부 목적에 분명 부합할 것이란 점을 지적했다. 동시에, 그것은 기독교 선교회들로 하여금 기독교인 부모의 자녀들에게 종교 교육을 제공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게 할 것이고, 학교를 완전히 세속적으로 운영하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법령이 기독교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고, 제정된 어떤 예외 규칙도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따라서, 만약 성경이 선택 과목이라도 기독교 학교의 교과과정에 허용된다면, 당국자들은 학교를 운영하는 다른 모든 종교 단체에게 유사한 특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많은 곳에서 하나의 강력한 학교 대신에 다수의 소규모 미약한 학교들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 법령의 목적은 실패한 것이 된다. 따라서, 종교교육은 선택 과정으로도 허가될 수 없다. 그는 우리의 목표가 주일학교와 교회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대학(Seoul College)의 지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논의 과정에서 당국이 그 대학이 오래된 대학 허가장에 기초하여 존 D. 웰스(John D. Wells) 학교의 일부로서 임시로 운영되고 있고 따라서 종교 교육을 제공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기관으로서 설립되자마자 신설 학교를 위한 수정 법령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란 점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구셔 박사(Dr. Goucher)가 이곳에 있을 때 당국자와의 대담에서 그 기구가 분명 새로운 법령 하에서 설립되었다는 것에 동의했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당국자들이 스피어 박사(Dr. Speer) 또한 이 점을 이해하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이들과 이와 같이 의견 일치를 본 이후, 그는 선교사들의 마음에 어떤 의문이 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현 상황이 대학이 구성되는 동안의 일시적인 상황이고, 따라서 새로운 법령의 적용 사례로 간주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학교가 소년 및 소녀들에게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선교사들은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이들 소년, 소녀와 접하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교육 사업을 포기하거나 종교를 교과과정에 넣을 수 없거나 요구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기독교인 교사들로 하여금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제 개인적인 신념은 우리가 "10년의 유예 기간" 동안 그 법의 수정을 확보할 모든 적절한 수단으로써 정중하고 공손하지만 확고한 저항과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계속해서 성경을 가르치고 매일 예배를 드리며 그리스도에 대해 자유롭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개입하여 학교를 폐쇄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시한 이유 가운데 일부는 고마츠 씨(Mr. Komatsu)에게 보낸 6월 16일자 제 편지에 나와 있는데, 그것의 사본은 위원회가 그것을 승인한 그 모임 이전에 위원회 회원들에게 우송되었습니다. 위원회는 그것을 승인했습니다. 저는 아래의 생각들을 덧붙이고자 합니다.첫째 - 성경이 교과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이고 그리스도가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그들 앞에서 탁월한 존재로 지켜질 때조차, 우리 학교들을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것으로 유지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기독교적인 봉사에 헌신하도록 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교육 기관들의 세속화 경향은 기독교적인 운영이 가장 신중하게 이루어질 때조차 선교사와 위원회의 끊임없는 불안의 원천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고통스러울 만큼 혼숙합니다. 성경을 가르칠 때 가장 완고하고 단호한 노력을 통해서만 학교들이 충분히 기독교적인 특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성경이 배제되고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일이 금지된다면, 철저한 세속화를 억제하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둘째 - "학교 밖과 규정된 학교 수업 시간 이외에" 자율 학습을 통해 성경과 기독교를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전히 환상입니다. 규정된 학습 시간과 다른 강제적인 사항이 포함된 필수 교과과정은 보통의 소년 소녀들이 학업에 투자할 모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미국 학교에 다니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과외 자율 학습에 참여할 것인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미국 학교들에서 그런 성경 공부 수업에는 단지 소수의 학생들만이 등록할 것입니다. 상당수의 신실한 기독교인 젊은 남성들이 재학중인 철저한 종교적 대학들에서조차, 자발적인 성경 수업과 기도 모임에 참여하는 학생 수는 전체 학생 수에 비해 아주 적습니다.셋째 - 학교에서 그리스도 혹은 종교를 결코 언급하지 않는 교사가 그리스도를 위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환상입니다. 그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신봉하는 진리에 관해 침묵하는 교사의 광경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교수가 수학자로 일컬어졌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대수학을 이해하지 않듯이,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특히 그 공동체에서 거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적대적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충실하고 공개적인 재현으로도 어떤 실질적인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아시아에서 사실입니다. 언설이나 노력 없이 "삶"만이 아시아인들을 그리스도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예의바른 태오, 침착한 기질, 외관상 순수한 행동이 기독교인의 진정한 미덕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수천 명의 합리주의자, 불가지론자, 유학자와 기독교 전체를 거부하는 다른 이들에 의해 구현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아시아의 청년은 일관된 삶에 기반한 기독교의 가르침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씨가 곱고 큰 죄로부터 자유롭다 할지라도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말하지 않는 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그들은 그를 도덕적 소심함 때문에 훨씬 더 경멸하기 쉽습니다. 이런 원칙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다른 나라의 일부 선교회 교육 기관들은 수년 동안 개종한 학생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 교회들은 그리스도가 신앙 고백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 최고 존재라고 믿는 분리파 교회 학교들을 우리가 설립한 경우를 제외하고 목사 없이 운영 되어야만 했습니다.넷째 - 그리스도와 성경이 학교에서 추방될 수 없고, 그것들이 삶뿐만 아니라 교육에서 지엽적인 문제라는 인상을 학생들의 마음에 심어주지 않은 채 외부 장소로 좌천될 수 없습니다. 소년 소녀들은 인생에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 즉 특히 영향을 받기 쉬운 시기에 학교에 다닙니다. 만약 학교가 그리스도를 최고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학생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헤릭 존슨 박사(Dr. Herrick Johnson)가 일찍이 말했듯이, "기독교는 과학과 문화에 몰두한 이런 시기 동안에 침묵해서도 안 되고 숨을 죽이고 말하면서 참아서도 안 됩니다. 고전의 성벽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환영는 학문이 되어야 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맥코시 총장(President McCosh)은 이 점을 분명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의 박식한 수장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는 단호한 종교적인 믿음은 지난 시절의 미신처럼 시대에 뒤진 낡은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것은 존속된 연구들처럼 관심을 유발하지 못할 것이고, 과거에 속하고 이런 개화된 시대에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하트포드 신학교(Hartford Theological Seminary)의 학장인 신학박사이자 법학박사인 케란네톤 W. 재커버스(Dean Kelanethon W. Jacobus)는 최근에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의 근본적인 사실과 원리를 소개하는 일이 대학 교과과정에서 간과되고 있고, 따라서 학생 집단의 지적 생활에서 아무런 위상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 신학교로 방향을 전환한 학생은, 그의 희망이 그리스도를 설교하거나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든, 해외에 복음을 공포하는 것이든, 자국의 사회적·도덕적·종교적 사람을 재구성하는 것이든,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의 위대한 역사적 현실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철학을 거의 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다섯째 - 우리는 한국 교회와 한국 사람들 전체에 미친 묵인의 예상되는 효과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30년 이상 동안 선교사들은 인간의 의무가 어떤 개인적인 위험이나 희생을 무릅쓰고, 사람의 첫째이자 초월적인 의무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복종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그를 따르는 것임을 설교해 왔습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런 요청을 위험과 박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에 두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 일부는 감옥에 갔고 고문을 감내했습니다. 신천의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고백 때문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면서 손이 묶인 채 거리로 끌려 나갔을 때, 그들은 침묵하는 대신, 여러 지역들에서 들렸던 어조로 노래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 그것은 정부가 그들에게 원했기 때문에 잠자코 있어야만 했던 이런 영웅적인 젊은 남성들에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증거하지 못하기 보다는 재산이나 건강을 얻었던 수백 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런 기독교인들이 지금 선교사와 위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무언가 혹은 어디엔가에서 종속적인 지위를 차지해야만 한다는 정부의 요구를 묵묵히 따르고 있음을 목격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언제나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을 한다면, 저는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존경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그런 원칙에 입각해서 행동했다면, 선교 사업은 오늘날 아시아에서 거둔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주로 수많은 구성원들이 다니엘의 예(다니엘서 5:10)를 따랐기 때문에 견고하게 확립되었습니다.그는 왕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을 금지하는 "그 문서에 (왕이) 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기 집으로 갔다. 그의 집 옥상 방 창문은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늘 그랬듯이,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의 예(사도행전 5:41-42)를 주시해 보십시오. 그들은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설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면서,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그리고 매일 성전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두 명의 선교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다른 이들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법을 수정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거두리라는 희망을 가지려면, 저항을 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저항은 정부가 그 권위를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듦으로써 정부의 현 입장을 단지 강경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다음의 생각들을 말씀드립니다.첫째 - 20여 년 전, 일본 문부성 장관이 정부가 승인한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금지하는 훈령을 공포하자, 항의를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수정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그 때 자신들이 누구를 섬길지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정부 교육 체계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학생들이 사실상 제국 대학에서 그리고 애국적인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어떤 지위에서의 추방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사와 위원회들은 그들이 선교 자금을 보통 교육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고, 즉 우리의 선교 사업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학교는 문을 닫아야만 했고 다른 학교의 출석 학생 수는 수백 명에서 수십 명으로 감소되었습니다. 잠시 마치 일본에서 선교 교육 사업의 종말이 온 듯 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저항이 모든 나라의 기독교인들에게서 폭발했습니다. 일본이 예의 주의하는 기독교계의 공개적인 견해는 일본 정치가들로 하여금 역행하는 조치가 취해졌다고 느끼게끔 했습니다. 그 훈령은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교 사업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확대되었는데, 그것은 위급한 시기에 선교회와 위원회들이 그들의 신앙을 희생하면서 국가의 호의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교육자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우리 일본 선교회의 라이샤워 목사(Rev. Dr. Reischauer)는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혹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독교 학교들은 오늘날 그들이 같은 등급의 국립 학교에 부여된 모든 특권을 사실상 누리고, 동시에 그들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제공할 수 있기 전까지, 지난 15년간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길을 싸워서 닦았다는 것입니다. 도쿄 메이지 가쿠인 대학(명치학원대학)의 K. 이부카 총장은 1915년 11월 25일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저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정부지원학교와 공립학교들에 관한 한, 일본 정부가 이들 학교에서 종교 교육과 의례를 모두 배제한 것은 옳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립학교들에 관한 한, 개인의 지원을 받든 법인의 지원을 받든,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사립기관들은 종교 교육을 제공할 완전한 권리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들이 정부가 규정한 필요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면 종교적인 모임을 개최할 완전한 권리도 가져야만 합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듯이, 이것은 우리가 메이지 가쿠인에서 취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자유의 원칙을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특권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끈기 있게 당국에게 개진함으로써, 우리는 잃어버린 특권들을 하나씩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부지원 중학교와 우리 중학교부간의 차이는 유명무실합니다. 이름조차 거의 동일합니다. 하나는 중학교(Chugakko)이고, 다른 하나는 중학부(Chugaku-bu)입니다."둘째 - 저항은 다시 한번 1912-13년의 추정된 한국인 음모(Korean Conspiracy)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정부는 고발된 사람들을 석방하는 시간과 방법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체면을 세우기" 위해 계획되었고, 그 용서를 "천왕의 자비"로 규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상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약 그것이 우리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면, 유죄를 선고받은 105명의 한국 기독교인들 일부는 죽고 다른 이들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것이란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이런 두 건의 저항이 거둔 성공은 분명 우리를 또 다른 저항으로 쉽게 이끌지는 않겠지만, 저항이 절실하게 필요할 경우, 그것은 상황이 악화되기 보다는 개선될 것이란 나름의 희망과 더불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합니다.셋째 - 위에서 지적한 고려들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이 저항은 단지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더 그것을 저지르게끔 결심하게 만들 뿐이라는 근거에서, 불의에 대항하여 그 어떤 저항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만약 그런 원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면 세상은 어떤 상태에 있을까요? 법을 공표한 어떤 정부가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시행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그것은 오히려 그 법이 여론에 의해 승인되었고 따라서 그것을 엄격하게 시행할 추가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특정한 법률에 반대하는 이의 제기가 전혀 없다면, 왜 정부는 그것을 시행하지 않습니까? 유일하게 가능한 교정 방법은 저항이고, 하느님의 교회와 관련하여 저항을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입니다. 일본인을 편들겠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서 우리에게 그런 저항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들은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거의 의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고는 일본 고위 관리들이 완고하고 모든 이유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들 동포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란 점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 일본인의 친구로서, 그들이 공정하고 공평한 사람들이고, 특정 법률로부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이들의 의사표현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며, 조선 총독부가 지적이고 공평한 다른 문명화된 정부처럼, 타당한 제안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워싱턴의 미국정부에 접근할 때의 진솔한 자세로 그들에게 접근할 때 전혀 망설임이 없습니다.선교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규제들이 조선 총독부에 의해 공포되었고, 또 위원회의 태도와 정책과 관련하여 약간의 오해가 있기 때문에, 저는 우리가 현안 문제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하고, 그런 진술에는 다음의 고려들이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첫째 -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진실한 우애 및 조선에서의 일본의 전반적인 정책에 대한 따뜻한 공감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독립 국가를 원하는 사람들의 자연적인 열망에는 공감하지만, 극동의 상황에 관한 한, 우리는 조선 사람들이 그들의 천부적인 독립을 유지할 수 없고, 모든 점을 고려했을 때, 그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또한 특정한 행위들에 어떤 예외가 취해지든, 일본인의 지배는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유익한 통치였고 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들의 입장은 지난 번 연합 평의회(Federal Council) 연례 모임에서 채택된 결의안의 아래 발췌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조선 개신교 복음주의 선교회 연합 평의회의 성원들은 우리가 일본 제국 정부에서 누리고 있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고, 일본 제국의 거주자이자 기독교 선교사로서 우리는 하느님이 정하신 민간인 당국자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충분히 존중과 복종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기로 결의한다."위원회와 선교회는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다수의 미국인들이 한국의 신민들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근본적이고 확고한 고려를 면밀히 기억해야만 합니다. 미국인들은 인종과 사회적·정치적 관념에서 전혀 다르며, 따라서 많은 일본인들의 판단에 의하면, 자국의 구상에 장애물입니다.저는 일본인들이 종교 문제보다는 통제 문제에 더 관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라우치 총독(Governor-General Terauchi)이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소년과 소녀들에게 행사하는 미국의 영향력이고, 또 한국 소년과 소녀들이 어린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을 용인 할 수 없다고 실제로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보에 밝은 한 친구는 저에게 이런 두려움 혹은 경계심이 당면한 어려움들의 원인이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열쇠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의 지배에 도전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모든 문명화된 정부와 문명화되지 않은 대부분의 정부들이 주저 없이 부여하는 합당한 종교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일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언어, 교과서, 교과 과정, 교사의 자격 조건, 표준화, 시험, 관련된 문제들에서, 우리는 정부 규제에 순종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진심으로 또 철저하게 협조해야만 합니다.따라서 우리가 일본인과 그들이 조선에서 추진하는 전반적인 계획에 우호적이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일본인의 도덕성과 우리가 책임감을 버릴 수 없는, 기독교 사업에 대한 일본의 관련성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에 무관심하게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갖는 합법적인 목표들이 그리스도의 대의 그리고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의 최선의 이익에 해가 되는 특정한 행동들을 정당화한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기독교 학교에서 제외하겠다는 일본 총독부의 결정에서 우리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것이 그런 특정한 행동입니다. 만약 어떤 남편이 아내를 매질한다면, 남편으로서의 책무를 성실하게 이행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우리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금지하고, 그리하여 학교가 존재하는 주된 목적을 무효로 자신들의 목적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합병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충실한 미국인들이고, 우리 국민이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의 것들을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필리핀의 미국 총독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성경을 우리 학교에서 배제하라고 명령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저항할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거부하고 경찰에 의한 실질적인 폐쇄에만 굴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라도 정부가 가진 의도의 일반적인 자비심이 이런 명령의 정당성을 적절하게 변론할 수 있다고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특정한 법이나 행동에 저항할 때, 그 저항이 조금이라도 일본이나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유사한 상황에 있는 필리핀의 미국 정부에게 주저 없이 그리고 솔직하게 하려고 하는 그와 같은 저항입니다.둘째 - 우리의 선교 정책은 일본이 조선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거나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는 의미에서 변방의 식민지로 통치할 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일본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하며, 조선 사람들을 자신들과 동화시키는 것이 일본의 목적입니다. 고마츠 씨는 이런 목적을 자신의 편지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에서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저는 무엇보다 당신이 일본 제국 정부가 조선을 위해 결정한 행정 정책의 목적이 유럽과 미국 정부가 자국 식민지를 향해 취한 결정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간청합니다. 양 민족 간의 역사적·인종적 관계를 고려함으로써, 문명화 경쟁에서 뒤쳐진 한국인들을 지원하고 인도하며 향상시키고, 그들을 명목과 실질 모두에서 제국의 선하고 지적일 뿐만 아니라 충실한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과업이지만, 두 민족의 영원한 복지와 행복을 보증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실행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조선 총독부의 고귀한 사명이라고 주장합니다."이 정책은 우리의 신실한 호의와 애정 어린 협조를 받을만합니다. 우리의 선교 정책은 모든 합당한 방식으로 그것에 순응해야만 하고, 우리는 국가의 전반적인 프로그램으로서 그 정책과 양립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반드시 피해야만 합니다.우리는 이런 동화 정책에 장애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모든 정치적인 협력과 영향력에서 자유롭게 하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 접촉하는 한, 일본인의 권리를 마음속에서 우러나서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태도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이부카 총장은 정확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총독부는 신민을 동화시키는 원칙이나 과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보통학교들에서의 어떤 가르침이나 영향력에 극도로 신경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에서 기독교 교육의 모든 문제는 그런 관점에서 고찰되어야만 합니다."셋째 - 일본인들의 이런 정책과 조화를 이루어, 위원회는 장차 조선에 파견될 모든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배우고, 의사·간호사·교사로 파견되는 선교사들에게 이를 이행하도록 권고하라고 조선 선교회에 충고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언어의 습득이 가능한 나이를 지나지 않은,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시간과 체력이 허용될 때 일본어를 공부할 것을 권고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교육과 의료 사업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넷째 - 토착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의사들은 법에 의해 규정된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총독부의 요구를 이의 없이 따라야만 합니다. 공중위생을 다루는 직업종사자들은 적절한 자격을 소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문명화된 모든 정부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누구도 그런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서 미국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고, 우리는 이런 개화된 관행을 따르면서 일본인들의 과정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특별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제기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려사항은 그 시험을 영어로 치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심자가 대단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시험을 일본어로 통과할 충분한 역량을 획득하려면 그 이전에 그 언어를 3, 4년 공부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전문적인 일의 시작을 그렇게 오래 연기하게끔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들 상당수가 영어를 말하고 쓰기 때문에, 그들이 신임 의료 선교사들에게 일어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실행 가능합니다. 그리고 위원회가 그들에게 불원간 일본어를 배우라고 요구할 것임을 분명 보증하기 때문에, 총독부의 이해는 충분히 보호될 것입니다. 의료인의 필요조건에 미국에서 파견된 훈련된 간호사들이 포함된다면, 동일한 규칙이 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만 합니다.소득과 선교회 재산에 대한 세금과 관련한 법들 또한 부당한 차별이 없다면 항의 없이 따라야만 합니다. 만약 그런 차별이 있다면, 개별 선교사가 아니라, 미국 총영사와 협의하여 선교회의 공인된 위원회에 의해 이의제기가 이루어질 때, 차별철폐를 정당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차별을 할 어떤 의도가 있다고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마츠 씨는 11월 4일자 편지에서, "특히 조선의 당국은 종교 단체에게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토지와 주택을 과세 대상에서 면제하는 특권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이들 단체에게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정부 자산의 사용과 관련하여 특별한 호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진술에서 일본인들이 선교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산에 과세할 의도가 없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다섯째 - 그 최근 선전이 작은 불안감조차 불러일으키지 않은 "포교의 행위를 위한 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83호 법령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는 어떤 구체적인 간섭 행위가 없는 한, 이에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이 법령과 관련하여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선교 사업에 해를 입히거나 선교 사업을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리들이 선교회와 교회를 방해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인 기회와 권리가 그들에게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있는 모든 선교회를 대표하는 연합 평의회는 10월 연례 모임에서, 언더우드 박사(Dr. Underwood)와 롭 씨(Mr. Raub)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국내 문제와 종교를 담당하는 국장(Director of Internal Affairs and of Religion)인 우사미 씨(Mr. Usami)와의 인터뷰에 관한 보고서를 받았고, "우리의 우려가 사라졌다는 기쁨을 기록"하기 위해 투표를 했습니다. 우리의 선교 집행 위원회(Missions Executive Committee)의 의장인 찰스 E. 샤프 목사(Rev. Charles E. Sharp)는 10월 19일에, 연합 평의회가 "'우리의 우려가 제거되었다'는 말의 사용을 거부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더욱이 그가 썼을 때, 우사미 씨는 아직 인터뷰에 대한 위원회의 보고서의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다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려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하는 무언가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필라델피아의 저명한 변호사인 조지 와튼 페퍼 씨(Mr. George Warton Pepper)에게, 이 법령이 국제법의 어떤 원칙이나 미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조약에 의해 보장되는 미국 시민의 어떤 권리도 위반하지 않는다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것에 관한 우리의 개인적인 견해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 법이 실제로 우리 사업에 손해를 입히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논쟁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손해가 잇따라 발생한다면, 앞선 항에서 제시한 것과 동일한 과정을 따라야만 합니다. 즉, 개별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 총영사와 협의를 한 선교회의 공인된 위원회를 통한 정중한 이의 제기입니다. 한편, 선교회 집행 위원회 위원장은 그 법령 아래서 정부와 맺는 어떤 필연적인 관계들에서 선교회의 공식적인 대표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요청되는 보고서들에 관해서는, 인쇄된 모든 보고서와 통계, 출간된 다른 자료들의 사본을 총독부의 해당 관청에 신속하게 보내야만 합니다. 위원회, 선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하는 일과 관련하여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총독부가 정당한 정보를 원하는 사안에 대해서 그들이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에 관해서 정부에 보고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모두가 일본의 신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당국은 이들을 일본 신민으로 직접 다루는 그들만의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외국인이란 매개자를 통해 그들을 다루고자 원치 않는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선교사들이 자신들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야기가 아무리 해롭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말입니다.여섯째 - 일본 총독부의 모든 교육 규정들을 기독교 학교에서 종교를 추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 재력의 극한까지 빈틈없이 따라야만 합니다. 정부는 그 신민들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합당한 교육적인 기준을 요구할 권리를 의문의 여지가 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일본과 조선의 통합에 불가결한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감정을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조화되지 않는 교과서나 의식에 반대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7월 4일은 조선에서 설 자리가 없고, 미국 혁명과 독립 선언의 역사는 한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미국의 사례를 모방해야겠다는 인상을 갖도록 가르쳐져서는 안 됩니다. 설비의 등급과 교육 사업에 관해서는, 만약 우리가 깨끗한 건물과 자격 있는 교사들을 가진 우리의 현재 소학교를 유지할 수 없다면, 정부가 그것의 폐쇄를 강요할 때 우리는 반대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 경우 우리는 일본과 필리핀에서 하고 있듯이 우리의 기숙학교와 대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부카 총장은 이미 언급한 11월 25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사립학교에서 하는 종교 교육이란 특별한 문제는 논외로 하고, 저는 조선에서 그처럼 다수의 보통 학교나 소학교에서 선교학교를 유지하는 것의 타당성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 학교는 조선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그것들은 공립 보통학교와 경쟁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에서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상당수의 사립 보통학교가 있었지만, 정부는 전국에 공립학교를 건립하는 정책을 채택했고, 거의 모든 사립 보통학교는 공립학교로 대체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이든 다른 종교이든 불문하고서 종교 수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총독부가 가능한 한 빨리 그곳에서 동일한 정책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저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왔을 때, 공립학교와 경쟁하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중학교에 그리고 중학교 이상의 학교에 노력을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우리는 국가의 교육 기관들을 체계화하고 조정하며 개선하려는 정부의 바람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그것에 공감해야만 합니다. 우리 자신은 오래 전에 교육기관의 긴급한 개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우리는 이런 목적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쏟는 학무국에 진심으로 협력해야만 합니다.일곱째 - 교육과 종교의 분리에 관한 법령은 다른 과정을 정당화하는 듯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계 학교들의 근본적인 특징과 목적을 무효로 하는 무언가를 하는 독특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국자들은 "10년의 유예 기간"을 주지만, 우리가 그 기간의 만료 전까지 복종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방법들을 법령과 조화를 이루게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즉각 구체적인 사례를 다루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제가 앞 페이지들과, 특히 6월 21일에 승인된, 고마츠에게 보낸 6월 16일자 편지에서 지적한 이유들로, 저는 우리가 이미 취했던 입장을 정중하고 공손하지만 확고하게 고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회가 그리스도와 성경 교육을 우리 기독교계 학교에서 배제하지 않고 그들이 과거에 했듯이 미래에도 종교 수업과 예배를 지속하도록 조선 선교회에 권한을 주고 감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보란 듯 혹은 무례하게 해서는 안 되고, 그저 이전의 과정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만약 일본 총독부가 그들에게 이것을 금하고 학교를 폐쇄한다면, 우리는 같은 행위에 대해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책임을 지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위원회는 편의적으로 야기된 상황에 대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적으로 잘못되었고 우리 사업의 최선의 이해관계와 조선에서의 교회의 미래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되는 과정을 자발적으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조정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학교를 열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교과과정에 성경과 예배를 포함하고서 학교가 개교된다면, 이들 학교는 그 법령의 효력을 총독부가 정한 날짜 뒤에 설립된 모든 기관들에 즉각 미치게 하는 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분란을 촉진할 것이 분명한 호전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즉각 대처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만약 우리가 새로운 학교를 법령에 따라서 개교한다면, 우리의 전체 입장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 법의 공포 이전에 존재한 기관들의 경우, 현재 강요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총독부가 "가능한 빨리" 따를 것을 권하지만, 그것은 10년의 유예 기간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종교 교육을 계속한다고 해서 그 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이런 10년의 기간은 온건하고 분별 있는 논의와 저항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총독부에게는 스스로의 결정이 세상의 여론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시간이고, 또한 "체면을 세우는" 식으로 법령 수정을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담당관리가 바뀔 수도 있고 새로운 관리가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실합니다. 여기서 몇몇 영향력 있는 일본인들이 그 법령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진실로, 남 장로교 선교사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우치 파벌 밖에서는 그 법을 현 형태로 인정하는 일본인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총독부의 관직에 변화가 일어나자마자, 그 법에서도 어떤 변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그런데도 그것은 삶의 가능성이고 우리는 그것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일본인 친구들은 우리가 스스로 포기한 것을 되찾도록 도와줄까요? 저는 대구의 제임스 F. 애덤스 목사(Rev. Dr. James F. Adams)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는 11월 27일에, 지금 굴복하는 것은 "미래 노력을 위한 유리한 지점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가 이미 자발적으로 취소한 입장을 다시 취하는 쪽으로 준비하려고 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은 입장에서 훨씬 좋은 조건으로 협상을 할 것이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입장을 유지한다면, 우리에게 다가 올 기회들은 훨씬 클 것이고, 관리들은 정당하게 불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총독부가 우리에게 부여한 특권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현재 민감한 사항은 서울의 신설 유니언 대학(연희전문학교)입니다. 언더우드 박사는 몇 달 전에 학교가 존 D. 웰즈 학교(John D. Wells Training School)의 오래된 허가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학교는 그 법령이 효력을 발휘했을 때 이미 존재한 기관으로, 10년 유예 기간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일시적인 방책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언더우드 박사가 양 기관의 수장이고 존 D. 웰즈 학교 건물이 일부 대학의 수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관리들을 이것을 묵인해주었습니다. 아담스 박사, 벡커 씨(Mr. Becker)와 로브 씨(Mr. Robb)는 10월 16일 우사미 씨와 행한 인터뷰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12페이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서울 대학(Seoul Colleg)의 위치와 관한 논의 과정에서 당국과 그 대학이 존 D. 웰즈 학교의 일부로, 그 학교의 오래된 대학 허가장에 근거하여 일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종교 교육을 제공할 아무런 특권이 없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지금의 기구로 설립되자마자, 신설 학교들을 위한 개정된 법령 조항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상황이 대학이 조직되는 동안 일시적인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법령을 적용받는 경우로 간주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그 대학은 유니언 대학으로 정부 허가를 신청했고, 건물과 캠퍼스를 마련하기 위해 일대의 토지 매입을 정부와 협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 그 대학이 그 법령을 따라야 하는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문제의 중대성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추구해야 하는 과정에 대해 견해가 다릅니다. 저의 판단은 그 대학이 그 법이 효력을 발휘한 시점에 이미 존재한 기관으로 분류되도록 정부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결정이 그 날짜보다 훨씬 이전에 내려졌고, 금화 5만 달러의 자산에 담보로 제공되었고, 부지 매입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에 있으며, 교육이 실제로 시작되었다는 근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대학은 그 법령의 효력 안에서 신설 학교로 분류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적절하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가 이 점을 강조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실패하고, 그 이상의 지출을 미루는 것과 그리스도와 성경을 배제하는 것 이 양자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저는 지출을 미룰 것입니다. 위원회는 1915년 6월 21일, 고마츠 씨에게 보내는 6월 16일자 제 편지에서 택한 입장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을 때, 이런 대안을 수용하겠다는 의향을 사실상 나타냈습니다. 그것에는 18-19페이지에 있는 다음 진술이 포함되었습니다."만약 제가 조선의 사립학교에서 종교와 교육을 분리한 것이 다음의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숨긴다면, 저는 각하가 이 주제에 관해 저에게 편지를 작성할 정도로 보여주신 친절함에 대한 충분한 답신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8 아서 브라운이 브레트런(Brethren)에게 보낸 편지

    수신주소: 뉴욕 시 5번 가(街) 156수신자: 미국의 장로 교회의 해외선교이사회발신자: 간사 사무실한국위원회 및 실행평의회(Executive Council)발신일: 1915-12-15친애하는 브레트런(Brethren)이 달 23일 목요일 10시에 내 사무실에서 만나 로버트 스피어(Robert E. Speer) 박사와 함께 한국 선교단의 몇몇 문제들과 조선총독부에 대한 선교단과 이사회의 관계와 관련하여 협의하기를 한국위원회와 실행평의회에 요청했습니다. 아마 회의가 하루 종일 진행될 것이며 그래서 사무실에 올 사람들은 그렇게 예상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안녕히 계십시오.발신자: 아서 브라운

    9 북미외국선교협의회에서 고마츠에게 보낸 편지

    북미 외국 선교 협의회(The Foreign Missions Conference of North America) 대표자문 위원회(Committee of Reference and Counsel)발신일: 1915-06-16발신자: M. 고마츠(M. Komatsu) 씨께수신자: M. 고마츠(M. Komatsu) 씨께수신주소: 한국 서울, 외무국장(Bureau of Foreign Affairs)회장: 신학 박사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 목사님부회장: 신학 박사 제임스 바튼(James L. Barton) 목사님서기관: 신학 박사 찰스 와트슨(Charles R. Watson) 목사님회계: 알프레드 말링(Alfred E. Marling) 씨뉴욕 매디슨 애버뉴(Madison Ave.) 25회원 명단신학 박사 제임스 바튼(James L. Barton) 목사님신학 박사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 목사님신학 박사 제임스 엔디코트(James Endicott) 목사님신학 박사 제임스 프랭클린(James H. Franklin) 목사님신학 박사 월터 램부스(Walter R. Lambuth) 주교님신학 박사 아서 로이드(Arthur S. Lloyd) 목사님신학 박사 로버트 맥케이(Robert P. Mackay) 목사님신학 박사 아치볼드 맥린(Archibald McLean) 목사님알프레드 말링(Alfred E. Marling) 씨존 모트(John R. Mott) 씨신학 박사 프랭크 메이슨 노스(Franks Mason North) 목사님조지 와튼 페퍼(George Wharton Pepper) 씨신학 박사 T. 브론슨 레이(T. Bronson Ray) 목사님신학 박사 찰스 와트슨(Charles R. Watson) 목사님제임스 우드(James Wood) 씨윌리엄 헨리 그랜트(William Henry Grant) 씨신학 박사 프레드 해거드(Fred P. Haggard) 목사님1915년 6월 16일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M. 고마츠(M. Komatsu) 씨께한국 서울, 외무국장(Bureau of Foreign Affairs)M. 고마츠(M. Komatsu) 각하5월 18일 통지해 드린 바와 같이 최근 조선 총독께서 사립학교에 관해 발행한 특정 법령 및 지시의 영문 번역과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제목의 24번 법령에 대한 각하의 논설 그리고 ‘교육과 종교의 분리’라는 제목의 각하의 글을 싣고 있는 4월 2일과 3일의 서울신문(Seoul Press) 사본이 동봉된 4월 8일자 각하의 서신은 잘 받았습니다. 이 법령과 규정들은 제가 공식적으로 관련된 이사회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선교 이사회의 교육 정책과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제가 생각하기에 각하께서는 저를 통해 그들에게 정부 시책의 성격과 범위를 알리려고 하셨기 때문에 저는 북미에서 다양한 교파의 선교 위원회를 대변하는 위원회로서 이 편지지에 이름이 인쇄된 자문 위원회(Committee of Reference and Counsel) 회원들과 상의를 했습니다.또 무게 있는 의견을 내놓는 몇몇 국제적으로 유명한 교육가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습니다.저희 위원회에서는 프랭스 메이슨 노스(Frank Mason North) 박사가 회장으로 있는 소위원회에서 관련 이사회와 직접 교신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각하께 서신을, 각하께서 제게 보내신 것처럼 사적인 서신이되 교신에 대해 알 권리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승인하에 씌어진 서신을 보내야 한다고 동의했습니다.각하께서 그와 같이 중요한 자료들을 제게 친히 보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해 주시고,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감명 받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사적으로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선교 이사회는 한국에 많은 학교를 두고 그 학교들과 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들을 후원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의 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이 일부 학교들, 특히 서울에 있는 연합 기독 대학(Union Christian College)의 장비를 보다 나은 것으로 할 계획도 세웠습니다.이사회가 이러한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한국의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최고의 기독교 교육을 우리가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고, 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비롯해 모든 학교가 만족스러운 교육적 수준에서 볼 때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조선 총독의 합당한 바람에 부합하고자 하는 저희의 진심 어린 바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하께서는 제가 1909년 한국에 있을 때 이 문제에 대해 각하와 교육국장께 의논을 구했던 것을 아마 기억하실 것이고, 또 각하께서는 분명 현 국장이신 데이사부로 세키야(Teisaburo Sekiya) 경이 지난해 미국에 있을 때 제가 여러 저명한 선교회 지도자들을 오찬에 초청해 그분을 뵙게 해드렸고, 그곳과 제 사무실에서 대화를 갖고 그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계실 것입니다.따라서 저는 여기서 이사회에서는 정부가 모든 학교를 검열해서 학교들이 잘 운영되고 있고 의사로 개업하거나 정부에서 일하려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자격을 부과하고 있는지를 볼 권리가 분명 있다는 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만 다시 말씀드리면 될 것입니다. 이사회에서는 저희가 활동하고 있는 국가의 관계 당국에 전적으로 충성하며, 그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지시에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고 또 조선 총독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에 적합한 규정을 만드는 데 있어 전적으로 총독의 권위와 재량권 내에서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모든 법령과 지시, 규정에 대해 자세히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규정들의 상당수가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밖에 다른 규정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많은 규정들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고, 해석은 아마 앞으로 규정의 적용을 책임지게 될 미래의 공직자들에게 맡겨질 것입니다. 이러한 일부 조항들의 조문이 해석된 방향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저도 우리가 일본제국 정부와 조선 총독이 추구해 온 정책이 앞으로 공평하게 총괄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가정이라는 점은 기꺼이 인정합니다. 사실 일부 선교사들은 제게 아마도 분명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주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발표된 특정 문구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들은 미션 스쿨들에게 지금까지 허용되어 왔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저희는 ‘한국의 교육 법령과 여러 부칙들’이라는 제목의 소책자와 서울신문(Seoul Press)에 실린 각하의 글, 그리고 3월 30일자 나가사키 신문(The Nagasaki Press)에 실린 세키야(Sekiya) 씨의 글에서 그러한 문구를 발견했으며, 세키야(Sekiya) 씨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교육과 종교는 서로에게서 독립된 각자의 방식으로 각각의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각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종교가 서로 섞인다면 특정 종교를 믿는 학생들은 다른 신앙을 지닌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될 것이고, 혹은 자신의 종교가 아닌 신앙을 믿도록 강요받게 되거나 자신이 믿는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믿음의 자유가 제한될 것이고, 교육 과정도 크게 방해될 것이다. 당국에서는 한국의 종교 학교들이 문명과 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고 있지만 이 학교들이 한국에서 현재의 교육 상황을 오랫동안 계속하게 둘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된다면 종교와 교육이 섞임으로 인해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폐단이 조만간 생기게 될 것이 자명하다.사립학교 규정의 개정이 시행된 것은 이러한 폐단을 막으려는 목적에서이다. 이와 같은 개정을 통해 한국에서 일반 혹은 산업, 특수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사립학교들은 공립 보통학교나 고등 보통학교 혹은 정부 특수학교를 규제하는 규정에 맞춰서 교과 과정을 맞추어야 하며, 이 규정들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교과 과정을 포함하는 것도 금지된다. 다시 말해서 보통학교든 산업학교든 특수학교든, 모든 학교를 규제하는 체제에 따라야만 한다. 그 결과로서 이 모든 학교들에서는 종교적인 교육을 시행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지키는 것은 금지된다.”이러한 선언은 당연히 기독교 교육 후원자들에게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언은 분명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학교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각하께서는 이러한 선언이 서울의 새 대학을 비롯해 한국에서의 교육을 위해 막대한 추가 금액을 모으려는 이사회의 바람에 미치게 될 영향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희는 조선 총독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교육 활동의 수준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사립학교들이 영국과 미국의 유사한 학교들이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자유를 갖게 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일을 추진해 왔습니다.저희는 일본제국 정부가 교육을 국가의 기능으로 생각하며, 혹은 각하의 표현을 빌자면 “교육은 국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가 국민의 교육에 무심해서는 안 되며, 무료 학교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세계 최고의 교육 실행에 완전히 들어맞는 것이며, 이는 미국과 영국의 공립학교 체제의 기초가 되는 원칙과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되는 것은 오직 무료 교육을 위한 공립 기관의 설비에만 적용되며, 그 이상 사립학교의 규정에까지 적용되지도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무료 공립학교들은 그 학교에 다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후원되며, 대부분의 주에서 법으로 일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취학 연령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다니는 학교는 부모와 학생의 선택에 따라 사립이 될 수도 공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립학교들은 공공의 복지와 필요를 위한 것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신들이 공립학교를 후원하든 그렇지 않든 학교세를 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 세금 외에 자신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가외의 비용을 부담하고자 한다면 정부에서는 그에 대해 어떤 방해도 하지 않습니다.『서울신문(Seoul Press)』에 실린 각하의 글입니다.미국에는 물론 사립대학이 있지만 보통 교육은 전적으로 정부에 의해 관리된다.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부터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까지의 학교 교과 과정은 정부가 관리하고, 어떤 종교적 교육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종교주의자들과 종교 단체에서 사립대학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이러한 기관을 세운 목적은 그들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 자체를 증진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 학교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종교적인 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각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교외나 교회 회원들이 관리하는 사립대학뿐 아니라 유치원, 초등학교, 문법학교, 고등학교 등 더 낮은 급의 사립학교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온갖 등급의 이 모든 사립학교들은 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거나 정부의 관리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공립학교들은 주에서 운영하며 주 정부가 밀접하게 관리하고 종교적인 수업을 하지 않지만 그 중 일부는 성경 강독과 개시 기도를 허용하는 학교도 있습니다.그러나 사립학교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로이 가르칠 수 있으며, 이에는 종교도 포함되고, 그에 대해 정부는 어떤 관여도 하지 않고 규제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세워진 기구로서 소유를 할 수 있도록 면허를 주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저 자신의 아들과 딸들도 그런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유복한 계층의 상당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냅니다. 그들이 자녀를 사립학교로 보내는 이유는 건전한 교육에는 종교도 포함된다고 믿으며 자신의 자녀들이 이를 실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받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 사립학교들 대부분이 공립학교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교육 활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두 번째 이유는 중요한 것으로, 즉 어떤 기준을 강요하는 정부의 규제 없이 사립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경쟁의 법칙이 적절한 보호 체제가 된다는 가정하에 움직입니다. 이 사립학교들은 수없이 많으며, 그 학교들은 한결같이 교육비를 받을 뿐 아니라 공립학교는 무료인데 비해 일반적으로 그 수업료가 비교적 높기 때문에 사립학교는 학생들을 끌어오기 위해 종교적 혜택뿐 아니라 월등한 교육적 이점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미국의 경험에서는 정부에서 사립학교로 인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없습니다.각하께서는 또 공립이나 사립 양편에서 최고 수준의 미국 학교에 있는 교수진에 대한 ‘종교주의자’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계십니다. 미국 학교들의 교사와 교수, 학장들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며 상당수가 성직자들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학장은 장로교 성직자입니다. 각하께서 언급하신 예일 대학의 해들리(Hadley) 학장은 실상 성직자는 아니지만 그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대학 예배당에서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게 하고, 종종 자신이 설교를 하기도 하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현(現)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 박사도 프린스턴 대학 학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로교 장로였으며, 대학 예배당에서 종교 의식을 열었습니다. 미국 내 최고의 사립 및 공립 대학들의 학장과 교수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많은 사람들의 명단을 각하께 드릴 수도 있으며,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 포츠타운(Pottstown)의 힐 학교(Hill School), 코네티컷(Connecticut) 주 레이크빌(Lakeville)의 호치키스 학교(Hotchikiss School), 뉴저지(New Jersey) 주 블레어스빌(Blairsville)의 블레어 아카데미(Blair Academy),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그로톤(Groton)의 그로톤 학교(Groton School), 앤도버(Andover)와 엑스터(Exeter)의 필롭스 아카데미(Philops Academy) 등 수백 개의 사립학교 거의 대부분에서도 성경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종교 의식 참여도 필수입니다. 사실 미국 사립학교 대부분은 기독교인이나 교회 회원이 아닌 교사는 채용하지 않을 것입니다.요컨대 미국식은 교육에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공립학교에 가고자 하거나 사립학교에 갈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 막대한 비용으로 공립학교를 운영하지만 교회나 기독교 개인들의 자원 단체에서는 전혀 어려움 없이 사립학교를 세워서 운영할 수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종교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이러한 것은 영국의 교육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스코틀랜드의 대학들뿐 아니라 이튼(Eton), 럭비(Rugby), 해로우(Harrow) 등 수십 개의 중등학교를 포함하는 영국 최고의 학교들은 일반적으로 ‘공립학교’라고 불리지만 정부 학교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이며, 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영국 왕실과 정부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대대로 이 학교들에서 교육시켜 왔습니다. 이 학교 교사들 상당수는 영국 교회나 스코틀랜드 교회의 성직자로 안수받은 사람들이며,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은 이 교회들의 교회원들입니다. 이 모든 학교들에서 종교를 자유로이 가르치며, 최고의 성경 주석과 신앙 서적, 기타 전체 기독교 세계의 종교적인 출판물들 대부분은 이 시설들의 회원들이 만들어 왔습니다.법령과 지시서, 규정, 각하의 글이 사적인 것이 아니라 발표된 것이기 때문에 저는 미국 내 가장 저명한 교육자 몇몇에게 이 사본들과 제 답장의 초본을 함께 보내면서 미국의 사립학교들이 자유로이 종교를 가르친다는 제 발언의 정확성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의 답변을 여기 덧붙입니다.뉴욕 컬럼비아 대학 사범대학 제임스 러셀(James E. Russell) 학장의 답장입니다.“미국의 교육적인 문제에 대해 보통 무척 잘 알고 있는 일본의 교육부 장관이 미국에 사립학교가 거의 없고 종교를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사립학교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주는 단 한 주도 없습니다. 최근의 미국 교육국장의 보고에 따르면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수가 1,647,104명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는 분명 실제보다 낮은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사립학교가 정부에 보고를 할 의무조차 없을 정도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종교 수업에 있어 미국 전역의 사립학교들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어디에서고 규제가 있다는 것은 들어본 일도 없으며, 더욱이 우리나라 많은 곳에서 종파적이지 않은 형태의 종교 수업은 공립학교에서도 허용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공립학교의 학생들이 정규 학교 활동과 관련해 자신의 신앙을 지닌 교사들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특정 규정이 마련되어 있어 이러한 수업이 어떤 경우에는 공립학교 건물 내에서 이루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학생들이 근처 교회로 갑니다. 이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가지 견해는 종파적인 수업을 공공 지출로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종교적 교육은 어떤 것이든 그것을 증진하려는 사람들이 비용을 대서 실행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재배(再拜)제임스 러셀(James E. Russell)예일 대학의 아서 해들리(Arthur T. Hadley) 총장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 왔습니다.“고마츠(Komatsu) 씨가 제출한 서류와 귀하의 답신 초안은 유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이 초안의 내용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의 종교적인 교육에 관한 고마츠(Komatsu) 씨의 표현이 잘못 되었다는 귀하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일본 정부가 문제가 되는 신문에 나타난 바와 같은 입장을 계속 고수한다면 우리로서는 한국 및 일본의 영향하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 교육 사업 투자를 그만두는 것 외에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방어도 취할 수 없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그같은 자금 회수를 강요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마지막 지적에서처럼 제가 귀하께 편지를 쓴다고 해서 고마츠(Komatsu) 씨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귀하가 상황을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귀하께 보낸 어떤 것이든 고마츠(Komatsu) 씨에게 보여주거나 이야기하셔도 좋습니다.재배(再拜)아서 해들리(Arthur T. Hadley)뉴욕 대학 (New York University)의 엘머 브라운(Elmer E. Brown) 총장의 답장“한국의 공립 및 사립학교에 대한 문제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의 최근 회의에서 논의를 했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사립교육에 대한 우리 정부 당국의 전반적인 태도를 잘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는 미국의 체제하에서 자라지 않은 학생에게 약간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교육 행정에 관해 국가적인 체제가 없다는 것은 분명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의 학교 체제는 여러 주의 체제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대체로 한 가지 유형이긴 하지만 그 중에는 작은 변형들이 있습니다. 연방 교육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적인 기관은 이들 체제에 대해 어떤 권위도 행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 전체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합니다.1911년에서 12년 사이의 주 학교 체제 통계를 다루고 있는 최근의 연방 교육국 보고서를 보면 모든 등급의 공립학교와 공립대학의 총 등록자 수는 18,376,257명입니다. 같은 해 모든 등급의 사립학교와 대학 등록자 수는 1,902,183명이었습니다.같은 해 초등학교에 대한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립 초등학교 17,707,577명, 사립 초등학교 1,505,637명. 같은 해 중등학교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립 중등학교(고등학교) 1,126,791명, 사립 중등학교 211,256명.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 관한 이런 수치는 위에 작성된 모든 과정의 학교에 관한 수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이 나라의 상황은 더욱이 우리의 탁월한 국가 교육 체계들 가운데 두 개에 대한 통계와 관련하여 설명될 것입니다. 최근 발표된 뉴욕 주 보고서, 즉 1912-13년의 보고서에 의하면 주 교육부(State Education Department)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모든 과정의 학교와 대학들에 등록된 총 학생들의 수가 1,956,365명입니다. 이 가운데 1,329,925명은 공립 초등학교에, 180,010명은 공립 중등학교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위의 사항에 덧붙여, 서로 다른 과정의 사립학교들에는 225,000명이 등록되어 있다고 추측됩니다.매사추세츠 주의 경우, 1913-14년의 통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공립 초등학교에는 576,510명이, 주의 사립 초등학교에는 114,192명이 등록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주의 공립 중등학교(고등학교)에는 76,620명이, 사립 중등학교(아카데미 등)에는 7,429명이 등록되어 있었습니다.이런 통계의 이면에는 이 나라의 교육 정책에 영향을 주는 근본적인 중요성에 대한 고려가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다른 어떤 형태의 교육을 선택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자녀에게 공공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의 관행입니다. 이런 공립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무종파적인 특징을 지니며, 대부분 반종교적이지는 않지만 비종교적입니다. 제가 위에서 기록한 통계에서 보면, 우리 학생들의 약 9/10가 그런 학교들에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교육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우리 미국 체계의 근본적인 교의입니다. 인용된 수치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학교들의 약 1/10이 사립학교들 혹은 특정 종교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로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주들의 법령집에 기초한 출석 의무 원칙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출석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요구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공한 것 이상으로 만족시킵니다.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에서 종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학교들 대부분은 이런 저런 종교 교단에 의해 혹은 그런 교단의 신봉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종파적인 교의가 그런 학교들에서 체계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립학교들에서, 종교적인 교의는 좀 더 일반적이고 덜 종파적인 차원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그런 학교들에서 교육은 비종교적인 근거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본질적으로 공립학교들에서 획득하는 것과 동일합니다.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교육의 이런 자유가 우리 학교 학생수의 1/10 정도에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런 노선을 따라 교육을 실시할 자유가 우리 교육 체계의 지극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덧붙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또한 널리 인정되는 이런 위대한 공적인 장점을 지닙니다. 즉, 그것은 다양성, 유연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헌법에 철저하게 부합하고 미국적 특징을 강화하는 데 의심할 바 없이 많은 것을 추가하는,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주도권 둘 모두를 위한 자유를 우리 국민의 교육에 가져온다는 것입니다.저는 이 문제에 관해 다소 장황하게 썼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언제나 저의 관심을 깊게 끌었기 때문이고, 또 저는 그것이 미국 교육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관련된 사실들은 분명 적절한 경우에 분명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경구,엘머 E. 브라운(Elmer E. Brown)."저는 또한 철학박사이고 법학박사인 폴 먼로 교수(Professor Paul Monroe)와 의논했습니다. 그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교육대학의 교육사 교수입니다. 각하께서 확실히 알고 있듯이, 교육계에서 갖는 그의 높은 권위는 그가 일본을 방문하는 동안 그에게 주어진 영예를 통해서, 그리고 대일본문명협회가 교육사에 대한 그의 저명한 책을 번역한 것에 의해서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그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고, 각하께서 제가 보내신 모든 자료들을 읽었으며, 저의 요청으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친애하는 브라운 박사.저는 여기서 당신이 6월 10일에 던진 질문에 답변을 하고 외무대신이자 총독부 총무부장관이신 고마츠 각하께서 보낸 편지에 약간의 논평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데 많은 흥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일본인들에게 우정을 갖고 있고, 그들이 이루었고 이루고 있는 위대한 사업을 존중하며, 그들의 문화를 찬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들이 서구 국가들의 공감을 멀리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란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가 기독교계 학교들이 동양인의 삶과 진보에 기여할 뚜렷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저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제 설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실제 방문을 통해 일본 학교들의 사업에 친숙하고, 일본 교육이 미국 교육에 기여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우리 문화에 기여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듯이 말입니다. 또 제가 서양이 동양에 기여할 매우 분명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듯이 말입니다.사립학교에 적용되는 이런 규제들에서 조선 총독이 취한 입장은 급진적이어서, 저는 대신 각하께서 서구 국가들의 교육 현황과 관련하여 많은 오해를 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의 해석과 이런 규제들에 대한 비평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논평할 자유를 갖는다면 그의 오해는 바로 잡힐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첫째 - 저는 서구 문명에서 이런 규제들이 꾀하고자 하듯이, 사립학교를 금지하는 입장을 유지하는 나라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런 학교들에서 교과 과목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과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결정하려고 하는 나라가 있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최소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을 규제하지만, 다른 과목들이 추가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나라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서반구의 모든 나라들에 관해서 이런 진술을 광범위하게 적용합니다. 저는 그것을 제한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 정교회의 영향을 받는 나라들의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조차 유대교와 다른 종파들이 자신들의 학교를 유지하고 이들의 자녀 교육을 허가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에서 사립학교가 허가되었습니다. 그 중 스페인이 가장 낙후된 나라입니다. 1910년 2월 3일자 칙령은 학교 검열을 구내 위생 상태, 도덕에 반하는 말과 행동의 예방, 조국, 법률로 제한했습니다. 바르셀로나 폭동, 혁명, 카날레하스 내각(Canalejas ministry)의 전복을 야기한 것은 그곳에서 극도로 보수적인 정부가 사립학교들을 검열하고 심지고 폐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일본이 많이 모방한 독일과 유럽의 튜튼족 국가의 교육체계는 사립학교를 허가하였습니다. 독일 학교 학생의 최소 6퍼센트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소녀들의 고등교육은 거의 전부 사립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1915년 4월 2일자 『서울 프레스(Seoul Press)』에 실린 기사에서 언급된 유럽의 상황에 대해 논평하면서, 존경하는 장학관(Commissioner)은 프랑스 법을 오해했습니다. 저는 실례를 무릅쓰고 그가 너무나 쉽게 오해한 내용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그가 인용하는 1904년 7월 7일의 프랑스 법은 사립학교들에서도, 심지어 성직자들이 수도회의 회원이 아니고 성직자 복장을 하지 않는 한 성직자가 가르치는 학교에서도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학교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저는 프랑스 공립 기관 감독관이었던 가브리엘 콤파이에르(M. Gabriel Compayre) 각하가 프랑스 교육 체계에 관해 1911년에 쓴 논문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더욱이, 폐쇄된 학교의 대부분이 평신도나 재속 성직자 직원들에 의해 재 개교되었다. 수도회 회원들은 성직자 복장을 민간인 사복으로 바꿨다. 1909년 6월 1일, 3,069개 학교가 평신도 사립 초등학교로 재 개교하였다. 992곳은 남학교, 2,077곳은 여학교였다. 사립학교들은 개인 혹은 단체에 의해 건립되어 유지되고 있다.국가는 교과과정과 방법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공립학교 교사들처럼 그들 교사들에게 연령과 자격에 관한 조건을 요구했다. 사립학교를 여는 정식 절차는 학교가 건립되는 곳의 시장에게 하는 선언으로 구성된다."(먼로, 『교육 백과사전』, 2권, p. 662)중등교육과 관련하여, 콤파이에르 씨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했습니다. "수도회(congregations)의 해산, 예수회·도미니크회·오라토리오회 대학들에 대한 억압으로 국립학교(state schools)에게 그들 학생의 일부를 보냈다. 하지만 다수의 자유 대학의 경우, 단지 일부가 주교나 민간 협회들의 보호아래 재 개교하였고, 수도회의 유산을 승계하였다. 이런 학교들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는 어림잡아 50,000명이다." (먼로, 『교육 백과사전』, 2권, p. 655)같은 사항에 관해서, 저는 우리 교수단의 F. E. 파링턴 박사(Dr. F. E. Farrington)가 프랑스 학교의 상황에 관해서 좀 더 최근에 한 진술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수도회의 해산과 종교 단체의 통제를 받는 학교에 대한 억압에도, 사적인 통제를 받는 이런 학교의 계승자들은 여전히 리세에서 발견되는 만큼의 학생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사립학교 졸업자들은 대학이나 어떤 국립 고등 연구 기관에 입학하기 위해서 국가가 지정한 대학입학자격 시험(baccalaureate examination)을 통과해야만 한다." (먼로, 『중등교육의 원칙들』, p. 87)(제 저작물에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훨씬 쉽게 그 진술을 찾아낼 수 있고 권위의 타당성을 확신합니다.)저는 또한 미국 상황에 관련한 대신 각하의 오역을 실례를 무릅쓰고 정정하고자 합니다. 비록 제가 그가 얼마나 쉽게 버틀러 (Nicholas M. Butler)총장 논문의 일반적인 진술을 오역할 수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이해하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정부는 절대로 학교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40개 주들 가운데 그 어떤 주도 사립학교의 설립을 금지하지 않거나 이제껏 그렇게 했습니다. 48개 주 가운데 그 어떤 주도 사립학교의 검열을 요구하거나, 국가가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에 관하여 버틀러 총장 논문에 언급된 진술은 식민지 시대 초기에나, 즉 150여 년 전의 과거 상황에서나 타당합니다. 둘째 - 사립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 저는 대신 각하의 논문에 연관된 서구 상황들에 대한 더 많은 오역이나 오해를 감히 정정하고자 합니다. 주가 아니거나 국지적 통치 단위가 아닌 미국 그 어디에서도 학교를 유지하는 이들의 견해에 따라서 사립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금지하고자 했거나 금지하려고 하거나 현재 금지하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의 근본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더욱이, 초등교육 등급의 사립 종교계 학교들, 소위 교구 부속학교들에 관련하여 오해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실제로 미국 모든 주에 있고, 모두 200만 명의 학생들이 다닌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들을 옹호하지 않으며, 국립 학교 체계와 겨루는 대규모 교구 부속학교의 체계를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며, 이런 저런 서구의 선진 국가에서 이것들을 방해하는 시도는 모두 자유의 중대한 위반으로 간주될 것이란 점을 하나의 사실로서 제시합니다. 중등학교 분야에서, 미국의 모든 주에는 사립학교가 있고, 이런 특징을 지닌 학교의 대다수는 종교 교단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대학과 대학교들에 관련하여, 카네기 고등 교육 재단이 한 최근 한 조사는, 대학으로 적절하게 이름 붙여진, 미국과 캐나다의 750개 기관 가운데 2/3가 종교 교단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런 통제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저는 이 문제를 고찰하는 데 시간을 쏟기 보다는 단지 이런 일반적인 상황을 인용하려고 합니다.고마츠 각하가 우리의 명문 대학의 총장 지위가 더 이상 기독교 목사 교육을 받은 남성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기 해 버틀러 총장이 언급하고 인용하는 분명한 특징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추론된 것들과는 다른 이유들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로 이제 교육자라는 특별한 직업군이 발생했고, 특히 행정적인 준비를 갖춘 남성들이 지금까지처럼 성직자 직업군보다는 교직원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인용된 예일대학의 경우, 현 총장인 허들리 총장(President Hudley)은 200년이란 긴 역사에서 최초의 비 성직자 총장입니다. 각하께서는 또한 주립 대학에서 이런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성직자에 반대하는 어떤 규제가 있다고 믿는데서 오해를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성직자였던 몇몇 총장들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그것은 교직원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당신이 좀 더 큰 규모의 거의 모든 기관의 교직원에서 성직자인 남성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컬럼비아대학에는, 기독교 목사와 유대교 랍비들이 모두 있습니다.셋째 - 저는 서구 문명의 전반적인 경향 그리고 교육과 종교의 관계에 관련한 그것의 상황에 대해서 각하가 오해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되는 것을 실례를 무릅쓰고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공유하는 깊은 확신과,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여 교회를 국가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그리고 그 반대로 국가를 교회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매우 분명한 경향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미국이 취하는 근본적인 입장입니다. 각하께서 지적하듯이, 그것은 일본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 생각을 더 진전시켜, 우리 서구 상황이 종교와 교육의 그런 분리라고 해석할 때, 즉 심지어 사립교육에 대한 종교적인 통제조차 완전히 금지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교육에 종교를 포함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한다고 해석할 때, 저는 그가 그 상황이 마치 서구 문명의 어떤 나라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고 굳게 확신합니다. 제가 위에서 인용했던 것처럼,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나라도 사립학교에서 다양한 분파들에 의해 보이듯이, 종교 교육을 금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전반적인 경향은 자유를 추구하고 있지, 제한하고 있지 않습니다.넷째 - 저는 종교에 대한 주립학교의 태도와 관련하여 미국 상황에서 도출한 주장들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성경 독해에 반대하는 법률을 제정한 주는 거의 없습니다. 종파적인 교육이 금지된 곳은 많고, 다른 곳에서 성경을 읽는 관행을 금지하는 많은 사법적인 판결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그들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근거에서 학교에 출석하는 이들의 아무런 반대가 없는 한, 공립학교들에서 성경을 읽고 단순한 종교적인 의식을 가질 권리를 유지하는 사법적인 결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들은 미시시피가 그러했듯이, 헌법에 배치하면서까지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권리를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종교 교육의 배제에 대한 각하의 언급은 부분적으로는 정확합니다. 심지어 종교 교단에 의해 통제된 대학 가운데 소수의 대학에서는 현재 최소한 통상적인 매일 예배 출석을 제외하고서 종교 교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좀 더 큰 모든 기관들에서, 분명 모든 국립 기관들에서, 종교 교육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되는 원칙은 자유이지, 규제나 강제적 배제가 아닙니다.이런 점에서, 저는 나아가 서구의 다른 문명국가의 관행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각하께서 알고 있듯이, 독일과 튜튼족 국가들, 사실상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대륙 국가들은 학교 교육에 종교 교육을 포함시킵니다. 게다가, 이런 튜튼족 국가들에서, 만약 지배적인 특징을 학교에 제공하기보다 학생들이 다른 종파의 신자라면, 어느 교단의 성직자라도 학교의 일원이 되고 종교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이 21개의 미국 주들 가운데 19개 주에서 널리 퍼져 있고, 저는 제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브라질에서나 미국에서 널리 퍼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 관습은 이것에 반대하고 언제나 그랬습니다. 제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그것이 사립학교의 조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다섯째 -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우리 서구 나라들에서 우리가 사립학교들을 건립하고 유지하는 이런 권리를 철저히 보호한 이유를 감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물론 영국에서 그와 같은 권리들의 위상이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고 약간 낮은 정도로 튜튼족 국가들에서, 상당한 교육적 진보가 이런 개인적인 주도권의 행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유치원, 공예와 수예 훈련, 직업 훈련, 대부분의 과학적인 훈련, 맹인과 농아 교육, 다양한 의존자와 비행자에 대한 교육적 치료, 부연하자면 사실상 교육적 관행에 거의 모든 새로운 특징이 사립학교에서 시도되고 증명된 덕택으로 공립학교 체제에 들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립학교, 아니 그보다는 비 주립학교의 존재는 진보의 필수조건입니다. 이것은 그저 모든 발전과 성장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자연법과 조화를 이룹니다. 그런 진화는 변화의 선택에서 나오고, 만약 당신이 이런 변화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진보에 대한 희망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감히 일본 교육 체계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것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비록 그것이 현재 가장 강한 힘을 제공하는 듯한 것일지라도-- 절대적인 획일성, 엄격한 규제, 다양성의 규제 경향을 지적했음을--매우 공감하면서 그리고 선의를 가지고--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다수가 단순히 서구 국가의 교육 체계에 존재하고 느끼는 보다 많은 자유를 염두에 두지만, 그들 대다수는 또한 좀 더 근본적인 것, 즉 진보와 성장이 결국 이런 권리 혹은 활동에서 약간의 다양성을 위한 여지에 의존한다는 점을 염두에 둡니다. 제가 보기에, 선교사 교육자들이 조선총독부가 만든 다음의 요구 조건들에 반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첫째 - 모든 학교는 최소한의 교과과정 필요조건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것은 정부 교과과정의 필수 요소들이나 정부가 요구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둘째 - 그들은 교과과정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위생 조건과 다른 문제들에 관해서도 정부 기준을 따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학교 검열에 복종해야만 한다.셋째 - 종교계 학교 졸업자들은 의학, 법학, 공립학교 교사와 같은 다양한 직업군에 진입하거나, 혹은 다른 정부 직책에 진입하려면 정부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넷째 - 심지어 교사들은 최소한의 정부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 저는 이것들이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동일해야만 한다고 믿지 않지만 말입니다.저는 정부가 위의 조건들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적절하게 요구할 것으로 봅니다. 비록 분명히 우리 미국 주 정부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고, 만일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극소수의 유럽 정부들은 이런 조건들 전부를 따르라고 요구하지만 말입니다.또한 조선의 위치, 조선의 전반적인 상황, 그리고 일본 제국의 전진 기지로서 조선의 중요성이 그곳에서 그 조건들을 어느 정도 이례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일본 제국이 한국인의 이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제국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일본 국민의 발전을 담보하는 권한이 전적으로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대신 각하께서 다른 나라들에서 존재했거나 현재 존재하는, 교육에 대한 정부 통제의 문제를 오해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각하의 적절한 주의가 요청되고,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위에서 강조된 관점에서조차 진정 필수적인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알자스 로렌에서도, 분단된 폴란드에서도,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제가 최근까지 알고 있는 한, 이런 통제는 조선에서 이런 새로운 규제들에 의해 제안된 정도까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저는 이 편지를 좀 과도하게 길게 썼습니다만, 제게는 그것이 매우 근본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저는 일본인을 향한 저의 잘 알려진 우정어린 태도에 당신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오쿠마 백작(Count Okuma) 각하께서는 저를 당신 집에 초대하는 대단한 영예를 베풀어 주셨고, 일본인에 대한 저의 우정과 일본 문화에 대한 저의 찬미를 확신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저명한 교육자들 대부분이 고마츠 각하에게 동일한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컬럼비아에서 이루어지는 제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매년 니토베 박사의 『부시도(Dr. Nitobe's "Bushido")』를 읽도록 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우리 동양인 이웃들의 이상을 좀 더 호의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의 영향력 있는 학생들 중 매년 수백명의 일본 친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고마츠 각하께 교육에 대한 제 생각과 그것의 현재 경향들에 대한 제 의견을 확인시키고자 한다면, 각하로 하여금 교육사에 대한 제 책의 일본어 번역본을 참조하도록 해도 됩니다. 그 책은 오쿠마 수상 각하께서 회장으로 있는 대일문명협회가 출판한 총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경구,폴 먼로(Paul Monroe)"특정한 종파 혹은 종교를 믿는 학생들이 다른 신앙을 가진 학교에 입학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세키야 씨가 『나가사키 신문』에 쓴 기사에서 넌지시 비추듯이, "그들에게 자신의 신앙이 아닌 신앙을 믿게끔 강요하는 것"은 선교위원회의 바람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은 누군가에게 기독교인이 되라고 강요할 수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획득되고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오직 두 세력 간의 경계가 분명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을 때"라는 진술은 미국과 영국 양국 모두에서 경험한 확실한 결과에 반합니다. 조선에서 기독교계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교육과 종교가 완전히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분리할 수 없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처음부터, 교육은 아시아에서 펼치는 선교 사업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다른 나라들에서 전개된 그 사업의 역사가 풍부하게 입증하듯이 말입니다.만약 조선 총독부가 선교위원회가 유지하는 사립학교에서 기독교를 가르칠 수 있게 한다면, 불교도들이 유지하고자 하는 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조금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선교 사업은 그 어떤 특별한 호의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절대적인 종교적 자유만을 원합니다. 일본 제국 정부가 기독교와 불교 양자 모두를 제국의 종교로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왜 어느 쪽 신앙이든 그 신봉자들이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교육의 자유를 허락받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국제 정세의 불안이라는 이런 불행한 시대에, 저는 일본 제국 정부가 서로 다른 민족사를 지닌 국민을 흡수하려는 노력에 포함된, 그리고 일본이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일부 강국들과 접촉한 제국의 일부의 점령을 수반하는 정치적 문제들의 독특성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국가의 진정한 이해가 교육과 종교의 자유에 가하는 어떤 제한으로 이익을 얻기 보다는 손해를 입는다는 점을 다른 국가들의 역사와 경험이 확실하게 입증한다고 믿습니다. 조선의 공립학교가 국가를 위해 학생을 훈련시키고자 하지만, 기독교계 학교는 기독교적 특성 인격의 고귀한 유형을 위해 그를 교육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각하께 그런 특징과 인격이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가장 확실하게 가능한 기초를 형성한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토 공작(Prince Ito) 전하의 공개적인 진술을 종종 인용했습니다."개혁 초기에, 일본의 원로 정치가들은 특히 기독교에 대한 불신 때문에 종교적인 관용에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믿음과 전파의 자유를 위해 열렬하게 싸웠고, 결국 승리했다. 내 추론은 이것이었다. 즉, 문명은 도덕성에 의존하고, 최고의 도덕성은 종교에 의존한다. 따라서, 종교는 관용되어야 하고 장려되어야 한다."만약 제가 조선의 사립학교들에서 종교와 교육의 분리를 시행하는 것이 의심할 바 없이 다음의 결과를 낳을 것이란 사실을 숨긴다면, 각하께서 이 주제에 관해 제게 글을 쓰면서 보여준 친절한 솔직함에 대한 충분한 답례가 아닐 것입니다.첫째, 만약 현재 조선에 있는 수백 곳의 기독교계 학교를 철저하게 폐쇄하지 않고, 그것의 확장을 위한 계획을 강제로 폐기하지 않으며, 목사와 복음 전도자, 다른 지도자의 훈련을 위해 이들 학교에 의존하는 선교 사업을 마비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능한 것이 될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종교가 건전한 교육의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부분이라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또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경을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고 학교 사업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행사를 집행할 무제한의 자유를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들은 어떤 나라에서든 학교에 돈을 지출하는 것을 그들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그 어떤 재정적인 배상도, 그것이 아무리 많은 액수라고 해도, 선교위원회에게 그들이 조선에서 펼친 사업 전반에 미친 통탄할 결과를 상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경험상 종교가 배제된 학교가 교회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본토박이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기 때문입니다.둘째, 그것은 미국과 영국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조선 총독부가 미국과 영국, 캐나다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의 진보를 위해 쏟고 있는 그런 관대하고 전적으로 이타적인 노력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셋째, 그것은 조선의 교육 체제를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의 최선의 교육 정책과 조화되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 국가들은 교육과 종교를 결합하는 사립학교들에 무제한의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넷째, 그것은 우리가 일본의 긍지였다고 간주했고 미국과 영국의 무정부지원하교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되는 교육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거부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칠 수 없는 학교는 교육의 자유가 없으며, 자체의 학교를 가질 수 없는 종교는 자유롭지 않습니다.다섯째, 그것은 세계의 개화된 국가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서구 국가들에 있는 일본의 여러 친구와 지지자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들은 수년 동안 일본이 통치하는 곳 어디에서나 널리 퍼져 있는 완전한 종교적 자유를 크게 인정한다고 말해왔던 것입니다. 각하께서는 이미 제가 다음의 입장을 취한 저의 공표된 말을 보셨습니다. 한국의 점령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저는 일본이 러시아가 거부하는 종교와 교육의 자유에 찬성하기 때문에 일본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현재 잘못되었다고 입증됩니까?예를 들면, 법령 24호에 있는 특정한 조항들처럼 제가 걱정 없이는 관찰할 수 없는 일부 세부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 편지가 이미 꽤 길어졌고 제가 논의하고 있는 특정한 문제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논의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만약 관련 법령과 훈령, 법규들이 기독교계 학교들에게 그들이 이제껏 누려왔던 자유를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는 정도로 수정된다면, 그것은 우리와 일본의 많은 친구들에게 대단한 위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 위원회에 새로운 법규들에 순응할 10년을 제공하는 데 함축된 고려를 기꺼이 인정합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는 만약 법규들이 그 때 시행된다면, 불행한 결과가 즉각 감지될 것이란 사실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교육 계획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우리 선교 사업의 필수적인 부분을 지정된 날짜에 중지하라는 명령은 그래도 지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날짜가 지금부터 10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그 기관들이 운영되고 있는 목적의 핵심적인 부분을 단념하지 않는다면 쓸모없게 될 기관들을 위해, 미국의 기증자들이 토지와 건물에 투자하리라고, 혹은 능력 있는 교육자들이 조선에 올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각하께 선교위원회가 조선의 학교를 유지하는 데 이기적인 관심이 전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지 않은 채 조선인들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면에서 총독부에 협조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종교 사업을 네 개의 연관된 노선--교육, 복음, 의료와 문예--을 따라 수행할 자유를 제외하고는, 이것을 아무런 유보 없이 보증합니다.각하와 조선 총독부의 다른 고위 관리들의 특징인 개방적인 태도와 높은 의무감을 알고 있는 저는 각하께서 제게 하시고자 한 바를 확신하면서 자유롭고 솔직하게 글을 썼습니다. 저는 기꺼이 스스로를 일본 정부와 일본인에게 가장 따뜻한 호의를 가지고 있고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조선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데 협조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다시 한번 각하의 호의에 감사드리면서, 저는 고귀한 헤아림의 확신을 가지고 머무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경구,아서 J. 브라운(Arthur J. Brown).

    10 브라운 박사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15-12-09발신자: 브라운 박사수신자: 브라운 박사브라운(Brown) 박사께책상에서 고마츠(Komatsu) 씨의 서신에 관련해 자문 위원회(Reference and Counsel Committee)와 루미스(Loomis) 박사, 배시포드(Bashford) 주교가 참석했던 ‘기독교 교육 위원회 미국부(American Section of the Committee on Education on the Christian Field)’ 회의 의사록을 발견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E. E. 브라운(E. E. Brown) 박사의 발언을 요약한 단락이 있는데, “1911년에서 12년 사이 미국 교육국장 보고서에 보면 모든 공립학교 학생 수는 1,800,000명, 사립학교 학생 수는 1,900,000명이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1,800,000명이라는 수치가 속기사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운(Brown) 박사에게 귀착되거나 그 회의에 참석한 위원회의 보증으로 되기 때문에 그러한 발언이 해외에까지 나가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숫자는 11,800,000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립학교의 학생 수가 1,900,000명이고 사립학교 등록자 수가 공립학교 등록자 수의 10분의 1이라면 11,800,000명이 대량 맞는 숫자일 것입니다.이 의사록이 자문 위원회(Reference and Counsel Committee) 기록의 일부라면 필요한 수정을 하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재배(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