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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현순] [현순문건3] 에 대한 전체 2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현순(Soon Hyun)의 은퇴와 죽음

    출생증명서훈장

    2 현순 원고 (3)- 시와 연극

    小引余는 朝鮮 京城人이다. 高麗朝 名臣 大將軍 玄潭胤(현담윤)公의 一支孫으로 京城 附近에서農業資生하다가 李朝中葉에 譯官에 就職하여 살아오던 川寧或延川玄族의 집에서 余가 出生하였다. 初名은 槃이요, 後名은 楯(현순)인데 今日까지 行世하는 이름이요, 號를 石汀(석정 현순)이라 하였다.性質이 愚直하여 革命 氣分이 있어서 世世遺職인 譯官 初職을 拒絶하였다. 幼時로부터 二十 未滿까지 漢文을 讀習하고 所謂 詩란 것은 小古風● 絶句 等을 學習하였을 뿐이요, 四律 吟作에는 敢히 生意도 못하였다.十九歲에 京城官立英語學校에 入學하여 二年間 英文을 學習하고 其後 日本 東京에 遊學하여 四年間 苦學中에게 우順天中學을 卒業하고 歸國하였다.西紀 一九〇三年 春에 仁川 濟物浦에 있던 美國人의 所營 東西開發移民會社의 通譯이 되어 移民同胞 百數十人과 同伴하여 布哇島(하와이)에 携妻 渡來하였다.처음 二年間에는 砂糖耕地에서 同胞와 같이 苦役하고 다음 三年間에는 敎役에 從事하게 되어 學校 及敎會를 設立하고 同胞 指導에 萬一을 받쳤었다.西紀 一九〇七年 五月頃에 妻와 하와이 出生 二女 一男을 帶同하고 歸國하였다. 在國 十二年間에 亡國의 恨을 품고 民族의 精神과 智性을 啓發코자 하여 敎育·牧會·巡回講演 等에 專力하였다. 西紀 一九一五年 夏期로부터 詩情이 일어나서 처음은 絶句을 吟作해보고 其後 一九一九年 二月에 獨立運動의 使命을 帶하고 國外에 나와서 中國·歐洲(유럽)에 遊歷할 때와 다시 하와이에서 再次 敎役에 從事할 때에 詩人 趙鏞夏(조용하)·金炳植(김병식)·朴基鴻(박기홍) 諸友를相逢하여 서로 和韻하고 詩格도 많이 배워 알았다.西紀 一九四〇年 春에 敎役에서 아주 退出하여 田園生活에 從事하다가 一九四七年 秋에 美大陸 羅城(로스앤젤레스)에 移居하여 閒寂한 餘生을 보내는 中에 羅城(로스앤젤레스)詩傑 好汕 金聲權(호산 김성권)과 檀山詩傑 小广 朴基鴻(소엄 박기홍) 兩大家를 相逢하여 追日 交遊에 絶句 或律詩 吟作의 數가 漸加하므로 情緖를 後人에게 알릴까 하여 이에 短引을 表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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