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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외무성문서 1 |
메이지(明治)41년(1908) 3월 재미 제국대사관고 한국 의정부 고문(在米帝國大使館雇韓國議政府顧問) D. W. 스티븐스(Stevens) 씨 조난서거 일건(遭難逝去一件)부속(1)장례비용의 건(2)진혼제(鎭魂祭)에 관한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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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외무성문서 2 |
고 훈1등 스티븐스(Stevens) 장례 집행 때 증여하신 화환 대금을 재미 제국대사관에서 체당하여 지불 필하고 영수증을 첨부하여 상환을 조회한 데 대해 다카히라(高平) 대사 앞 외환권으로 당성(當省) 내장료(內藏寮)에서 송금하였으니 본 금액에 대한 대사의 영수서를 송부해 주시기 바라며 이 점 말씀드립니다.영수증(領收證)一. 미화 75달러임.단, 재미 제국대사관에서 체당한 고 훈1등 스티븐스(Stevens) 장례 집행 때 바친 화환대금 재미 제국대사관에 송금하기 위함.이상 영수하였음.메이지(明治)42년(1909) 10월 22일외무대신관방회계과장(外務大臣官房會計課長)외무서기관(外務書記官) 시비즈 세이조로(淸水精三郞)내장두(內藏頭) 자작 와타나베 지아키(渡邊千秋) 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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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외무성문서 3 |
No.17 일요일 저녁 한국인 4-5명이 페어몬트(Fairmont) 호텔에서 스티븐스(Stevens)를 면담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스티븐스(Stevens)에게 일본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신문기사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냐고 추궁하였습니다. 스티븐스(Stevens)가 신문기사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대답하자 한국인들이 스티븐스(Stevens)를 공격하였습니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한국인들이 진압되었고, 특별히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스(Stevens)는 그 일을 정당하게 해결하였고, 누구도 체포당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호텔에서부터 워싱턴 행 기차를 탈 예정인 페리(Ferry) 역까지 스티븐스(Stevens)와 동행하였습니다. 스티븐스(Stevens)가 자동차에서 막 내리자 한국인 3~4명이 갑자기 그를 에워쌌습니다. 누군가가 스티븐스(Stevens)의 얼굴을 쳤고, 그 뒤 권총이 불을 뿜어 총알 두 방이 스티븐스(Stevens)의 등을 공격하였습니다. 총상은 다소 심각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외과의사가 위험한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인 한 명이 동료가 쏜 오발탄에 부상당했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티븐스(Stevens)를 저격한 자는 체포되었습니다.코이케(Koike)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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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1 |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전보(23일 오후 특파원 발)(전재 금지)전 한국고문의 조난(遭難)오늘 아침 코이케(小池) 총영사와 함께 정거장에 있던 전 한국 외부고문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씨는 2명의 한국인에게 권총으로 저격당하여 현재 빈사 상태에 있다. 스티븐스(Stevens)씨도 당시 1명의 한국인을 총살하였으며, 코이케(小池) 총영사는 무사하다. 전 한국고문의 조난스티븐스(Stevens)씨가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서 생각지 못한 재난을 당하여, 우리 관민은 특히 지대한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스티븐스(Stevens)씨는 전에 한국고문으로서 일한관계를 원활히 하고 또 한국의 모든 대외관계를 일한관계와 서로 간격(扞格)되는 바가 없게 하려고 진력한 공로가 적지 않다. 한국이 외교권을 일본에 위임하게 되자 그 직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 일본에 있으면서, 잠시 고국의 땅을 밟았다가 이 재난을 만났으니, 누구라도 불쌍한 감정을 느끼는 바다. 흉악한 무리의 흉악한 행위야말로 미워하고도 남음이 있다.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는 한국독립협회(韓國獨立協會)라는 것이 있고, 흉악한 무리는 그 회원이거나 혹은 그와 결탁한 자일 것이다. 대국(大局)에 통하지 않는 협소한 분노가 이따금 이와 같은 일을 일으키니, 실로 개탄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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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2 |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 전보(23일 발) (전재 금지)스티븐스(Stevens) 씨 저격당하다 통감부 고문 스티븐스(Stevens) 씨가 23일 아침 9시 화성돈(華盛頓, 워싱턴)에 가려고 코이케(小池) 총영사에게 배웅을 받고 정차장에 하차하는 동시에 한인 3명에게 저격당하여 스티븐스(Stevens) 씨는 총탄 3발을 맞았으니 생명이 어쩌면 불안하지 않을까. 스티븐스(Stevens) 고문은 정차장의 병원에 호송되어 시술을 받고 있다. 스티븐스(Stevens) 씨를 저격한 3명의 폭한은 즉시 포박되었는데 이 때문에 몹시 혼잡하였다. 이에 앞서 이곳의 한인은 회의를 열고 그들 3명을 대표로 하여 스티븐스(Stevens) 씨가 신문기자에게 말한 건을 힐문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들은 스티븐스(Stevens)씨가 말한 일한(日韓) 관계를 부인하고 결국 이런 거동으로 나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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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3 |
뉴육(紐育, 뉴욕) 전보스티븐스(Stevens) 씨의 조난(위와 같음)한국 정부 외사고문 임무를 맡고 있던 미국인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씨가 오늘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에게 저격당하였다. 조난 장소는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 도선(渡船) 승객대합소이며, 스티븐스(Stevens) 씨는 여관에서부터 마차를 타고 승객 대합소에 가서 대안(對岸)의 오클랜드로 건너가 그곳에서 기차를 타려고 위 선객(船客) 대합소에 들어가자 2명의 한인이 다가와서 갑자기 스티븐스(Stevens) 씨를 저격하였다. 스티븐스(Stevens) 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2명의 흉한(兇漢)은 즉시 포박되었는데 스티븐스(Stevens) 씨가 입은 상처가 몹시 중해서 어쩌면 생명에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무릇 이번 폭행은 어젯밤 스티븐스(Stevens) 씨가 체재한 페어몬트호텔 복도에서 스티븐스(Stevens) 씨에게 가한 습격의 속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때는 흉한 네 사람이 스티븐스(Stevens) 씨를 습격하였지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못하고 저지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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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4 |
동경(東京, 도쿄) 전화(電話)(24일)스티븐스 씨 저격당하다 다년간 재미 일본 사관(使館)에 고문(顧問)으로 있었고 그 후 우리 정부의 추천에 의해 한국 정부의 고문이 된 D. W. 스티븐스 씨가 일전에 횡빈(橫濱, 요쿠하마)를 출발하여 화성돈(華盛頓, 워싱턴)으로 향하였는데, 어제 23일 오후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서 華府(워싱턴 부)로 향하는 기차를 타려고 오클랜드 행 도선장(渡船場)에 내렸을 때 한국인에게 저격당하여 거의 치명(致命)의 중상을 입었다는 전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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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5 |
한국 고문(顧問) 兇報(흉보)미국 발로 모처에 도달한 전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가장 연고가 깊은 한국 고문(顧問) 스티븐스(Stevens) 씨(미국인)가 23일 오후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서 화성돈(華盛頓, 워싱턴)으로 향하는 도중 오클랜드 도선장(渡船場)에서 한인에게 사격당하여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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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보도 6 |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 전보스티븐스(Stevens) 씨 저격당하다전(前) 한국 고문(顧問)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가 지난 금요일 당항(當港)에 도착하였는데 당일 승합마차를 타고 여관 앞에서 하차하려고 할 때 갑자기 사격당하여 중상을 입었다. 흉행자는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 재주하는 한인이며, 흉행 전에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 신문기자가 스티븐스(Stevens)를 방문하였을 때 일본의 대한정책(對韓政策)을 칭찬하며 일본은 미국…(원문판독불가)…을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한다.(이상 22일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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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올해로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샌프란시스코 의거 100주년이 됩니다. 이 뜻 깊은 100주년을 기념하여 두 분 의사의 크나큰 업적을 기록으로 담아 자료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근대사는 그야말로 질곡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국권 회복의 희망과 의지를 버리지 않고 국내외에서 치열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조국 광복을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 민족이 비운을 겪고 있을 때 장인환·전명운 의사는 친일 외교관 스티븐스를 처단함으로써 일본의 잔악한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우리 겨레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두 분 의사께서 의거를 결행하신 지 한 세기라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남기신 위대한 발자취는 불굴의 애국혼이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 되던 시기 대한제국 외부고문 미국인 스티븐스는 “일제의 통치만이 한국을 발전시킨다.”는 간악한 거짓 내용의 망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스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친일 발언으로 미주 한인사회를 분노케 했습니다. 1908년 3월 23일 마침내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스티븐스를 응징한 의열투쟁의 총성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거사 후 장인환 의사는 “내가 스티븐스를 쏜 것은 스티븐스가 일본을 도와 일하면서 한국을 망하게 하는 고로 총을 쏘고 나도 그와 같이 죽기를 원하여 한 일이다.”라고 하여 죽음도 불사한 굳은 의지를 천명하셨습니다. 또한 전명운 의사는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확실히 한다고 선언하였는데 지금 와서는 우리 국권을 빼앗고, 속이고 업신여기고 있으니 내가 이 도적을 죽이려 한 것이다.”라고 하여 당당하고 의연하게 거사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두 분 의사의 구국정신은 많은 동포들의 애국심을 격동시켰으며, 미국인들마저 거사에 대한 찬탄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그 하수인으로 시종한 스티븐스의 비행을 국제여론에 폭로하고 규탄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상 장렬한 첫 의열투쟁(義烈鬪爭)이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국내외에 흩어져 와신상담하던 한민족의 혼을 일깨워 보다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항일운동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장인환·전명운의 샌프란시스코 의거 자료집』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문 자료들을 다수 입수하여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언론 보도를 비롯하여 의거와 관련된 일본 측 자료까지 총망라하였습니다. 영문으로 작성된 수감영장도 실었으며, 장인환 의사와 스티븐스의 사망진단서도 새로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 일본의 각 신문 지상에 보도된 내용들도 수록하여 각국의 사건에 대한 시각 차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흩어져 있던 개인 저술들도 한 데 모아 두 의사의 숭고한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자료집을 통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장인환·전명운 의사는 물론 거사를 계획하고 지원하였던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역량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수집된 자료를 편집하고 이를 고증하여 해제까지 작성해 주신 윤병석 교수님과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경해·김원모·문충한·안형주·오인환·정제우·전의식 선생님, 편찬 실무를 맡아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2008. 3.국가보훈처장 김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