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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양기탁] [우강양기탁전집2권] 에 대한 전체 10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1. 訓示

    朝鮮總督府官報 第七百五十九號 大正四年(1915)二月十六日 朝鮮總督官房總務局印刷所訓示京城監獄典獄尹致昊以下六名ハ我カ朝鮮倂合(강제병탄)ノ眞意ヲ了解セス之カ爲朝鮮人民ハ頓ニ悲境ニ沈淪スヘシト誤想シ憤慨ノ極明治四十三年(1910)九月ヨリ十二月ニ亙リ朝鮮總督ヲ暗殺シ以テ國內ノ人心ヲ刺戟シ兼ネテ世界ノ同情ヲ喚起セムトノ謀計ヲ運ラシタルモ遂ニ其ノ目的ヲ達スルニ及ハスシテ處刑ヲ受ケ各懲役六年ニ處セラレ昭憲皇太后ノ大喪ニ方リ刑期四分ノ一ノ減刑恩典ヲ受ケタルモ尙今後二年九箇月餘ノ刑役ニ服シ大正六年(1917)十一月二十四日ニ至リ刑期滿了スル者ナル處右等囚徒ハ爾來謹愼能ク獄則ヲ遵守シ衷心改悛ノ狀アルヲ以テ我カ 天皇陛下ハ至仁ノ叡慮ヲ以テ今回尹致昊以下六名ノ情狀ヲ愍ミ特赦ノ恩典ヲ下シ賜ヒタリ彼等ノ中ニハ先覺者ヲ以テ自ラ居リ名聲ヲ內外ニ博シタル者ナキニ非ス其ノ言動ノ影響スル所尠カラスト認ムルヲ以テ特赦ノ 聖旨ヲ傳ヘ之ヲ執行スルニ方リテハ特ニ懇切ナル誡告ヲ加フルヲ要ス今ヤ新政實施以來將ニ五週年ニ垂ムトシ拓地撫民ノ皇化一般ニ徹底シ人心漸ク靜穩ニ歸シタルヲ疑ハスト雖時ニ頑冥不靈ニシテ朝鮮統治ノ眞意ヲ了解セス國外ニ走リテ非謀ヲ構ヘ不穩ノ言動ヲ逞ウスル者アルノミナラス國內ニ於テモ此ノ輩ノ誑惑ヲ受ケ架空ノ妄想ヲ抱ク者ナキニ非ス然レトモ朝鮮統治ノ基礎旣ニ確立シタル今日如何ナル陰謀ヲ企テ縱令幾度ヒ總督ヲ殘害スルモ大局ハ秋毫ノ影響ヲ及ホスヘキニ非ス唯唯其ノ結果ハ政府ヲシテ餘儀ナク警備ヲ嚴重ナラシメ延テ國民融和ノ政策ニ支障ヲ與フルニ過キス其ノ寸益ナクシテ却テ不測ノ殃ヲ釀スヘキハ數ノ見易キ所ナリ抑朝鮮ハ嘗テ秕政ノ弊ヲ承ケ綱紀弛廢シ民衆疲憊ニ陷レルモノ今ヤ百度皇張シ秩序回復シテ國利民福ノ增進ヲ見ルニ至レルハ一ニ新政ノ惠澤ニ因ラサルハナシ殊ニ朝鮮ニ於ケル施政ノ方針ハ他國カ其ノ殖民地ニ對スルカ如ク之ヲ以テ屬地隷民ト爲サムトスルニ非ス斯土ヲ開拓シ斯民ヲ扶掖シ共ニ之ヲ文明ノ域ニ進メ帝國ノ版圖臣民トシテ彼我ノ安寧幸福ヲ計ルニ在ルハ啻ニ屢屢宣明シタル所ナルノミナラス五年間ニ於ケル施政ノ實績ニ徵シテ瞭カナリ尹致昊以下六名ハ其ノ智能固ヨリ克ク此ノ間ノ眞相ヲ透觀スルヲ難シトセサルヘク殊ニ旣ニ前非ヲ悔ヒ改過遷善ノ實ヲ擧ケタルニ鑑ミ其ノ出獄後ハ謹愼自ラ持シテ再ヒ其ノ方向ヲ誤ルコトナキノミナラス必ス正道ニ就キテ順良謹直ノ人トナリ以テ無限ノ天恩ニ應フルノ誠意ナカルヘカラス貴官ハ特赦ノ 聖旨ヲ傳達スルニ方リ如上ノ旨趣ヲ以テ懇篤ニ誡諭ヲ與フヘシ右訓示ス大正四年(1915)二月十三日 朝鮮總督 伯爵寺內正毅

    2 2. 訓示(朝鮮譯文)

    朝鮮譯文訓示京城監獄典獄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은 我朝鮮倂合(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의 眞意를 了解치 못하고 此로 爲하여 朝鮮人民은 頓히 悲境에 沈淪할 줄로 誤想하고 憤慨至極하여 明治 四十三年(1910) 九月부터 十二月에 亘하여 朝鮮總督을 暗殺하여 써 國內의 人心을 刺戟하고 兼하여 世界의 同情을 喚起코자 하는 謀計를 運動하였으나 遂히 其目的을 未達하고 處刑을 受하여 各 懲役 六年에 被處하여 昭憲皇太后의 大喪을 際하여 刑期 四分의 一의 減刑恩典을 受하였으나 尙今後 二年 九箇月餘의 刑役에 服하여 大正 六年(1917) 十一月 二十四日에 至하여 刑期滿了하는 者인바 右等囚徒는 爾來 謹愼하여 能히 獄則을 遵守하며 衷心으로 改悛의 狀이 有하므로써 我 天皇陛下는 至仁의 叡慮로써 今回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의 情狀을 愍하사 特赦의 恩典을 下賜하시니라. 彼等中에는 先覺者로서 自居하여 名聲이 內外에 博한 者가 없지 아니 하니라. 其言動의 影響하는바 不尠함으로 認하므로써 特赦의 聖旨를 傳하여 此를 執行함에 際하여는 特히 懇切한 誡告를 加함을 要하고 今則新政實施以來로 將次 五週年에 垂하고 拓地撫民의 皇化가 一般에 徹底하여 人心이 漸漸 靜穩에 歸한 것을 不疑할지나 時로 頑冥不靈하여 朝鮮統治의 眞意를 了解치 못하고 國外에 走하여 非謀를 講하여 不穩한 言動을 逞하는 者 有할뿐 아니라 國內에 在하여도 此輩의 誑惑을 受하여 架空의 妄想을 抱할 者 不無 할지라. 然이나 朝鮮統治의 基礎가 旣히 確立한 今日에 如何한 陰謀를 企하여 假合幾度總督을 殘害하나 大局에 秋毫도 影響을 及함이 아니라 唯其結果는 政府로 하여금 不得已 警備를 嚴重케 하여 延하여 國民融和의 政策에 支障을 與함에 不過하고 其寸益함이 無하고 도리어 不測의 殃을 釀함은 數의 易見할 바라. 抑컨대 朝鮮은 嘗히 秕政의 弊를 承하여 網紀弛廢하고 民衆이 疲憊에 陷한 者도 今則百度皇張하고 秩序回復하여 國利民福의 增進을 見함에 至함은 한 新政의 惠澤에 因한 바니라. 殊히 朝鮮에 在한 施政의 方針은 他國이 其殖民地에 對함과 如히 此로써 屬地隸民으로 삼고자 함이 아니라 斯土를 開拓하며 斯民을 扶掖하여 共히 此를 文明한 域에 進케 하여 帝國의 版圖臣民으로 하여 彼我의 安寧幸福을 計함에 在함은 屢屢宣明한 바 될 뿐 不啻라. 五年間에 在한 施政의 實績에 徵하여 明瞭하니라.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은 其智能이 本是 克히 此間의 眞相을 透觀함을 不難하겠고 旣히 前非를 悔하여 改過遷善의 實을 擧함에 鑑하여 其出獄後는 謹愼을 自持하여 再次 其方向을 誤함이 無할뿐 아니라 必코 正道에 就하여 順良謹直한 人이 되어서 無限한 天恩에 應할 誠意가 不無할지니라. 貴官은 特赦의 聖旨를 傳達함에 際하여 如上의 旨趣로써 懇篤히 誡諭를 與할지니라.  右訓示함  大正 四年(1915) 二月 十三日 朝鮮總督 伯爵 寺內正毅(사내정의)

    3 3. 寺內朝鮮總督暗殺陰謀事件關係者特赦執行の件

    五 寺內朝鮮總督暗殺陰謀事件關係者特赦執行の件  大正 四年(1915) 二月 十六日  朝鮮總督伯爵 寺內正毅(사내정의)  外務大臣男爵 加藤高明(가등고명) 殿  特赦執行の件  尹致昊(윤치호)外五名に對する特赦執行の件に關し本日內閣總理大臣へ及報告候處本件は外國にも喧傳したる事項なるを以て爲御參考別紙報告書寫及送付候也.(別紙)  大正 四年(1915) 二月 十六日  朝鮮總督伯爵 寺內正毅  內閣總理大臣伯爵 大隈重信 殿報告特赦執行之件  懲役6年 7月15日 尹致昊(윤치호)  懲役4年 7月15日 李寅煥(이인환, 이승훈)  懲役4年 7月15日 梁起鐸(양기탁)  懲役4年 7月15日 玉觀彬(옥관빈)  懲役4年 7月15日 安泰國(안태국)  懲役4年 7月15日 林蚩正(임치정)  右六名に對する特赦執行の件は昨十五日不取敢電報を以て及報告置候處本月十三日特赦御裁可の御通達に接するや直に京城監獄典獄に特赦狀を送付すると同時に別紙寫の通誡諭之旨趣に付訓示を爲し且高等法院檢事長に赦典執行の際臨場して訓諭を與ふへきことを命し同日午後四時四十分京城監獄に於て典獄は一同に對し恩赦施行の旨を告知し特赦狀を讀聞けたる上之を交付して聖旨を傳達し以て本官の訓示に基き特赦の趣旨及出獄後の行動に付懇篤なる誡諭を與へ又高等法院檢事長より訓諭する所ありたるに彼等一同は孰れも天恩の優渥なるに感激し恐懼の餘り遂に涕泣措く能はさるに至り今後は各專心實業に從事し誓て聖旨に戾らさらむことを期すへき旨を申出てたり釋放の際彼等の申出てたる歸住地及將來從事せむとする職業及出獄之際に於ける健康狀態等に左記之通りに有之候條此段及報告候也.左記歸住地, 職業  京畿道 京城府 堅志洞 六十八番地 農業 尹致昊  平安北道 定州郡 葛山面 益城里 九統三戶 農業 李寅煥(이인환, 이승훈)  平安南道 江西郡 雙龍面 新慶里 殖産事業 梁起鐸  平安南道 中和郡 東頭面 戊辰洞 一統七戶 商業 玉觀彬  平安南道 平壤府 倉田里 三十七番地 商業 安泰國  平安南道 鎭南浦府 碑石里 五十統十戶 農業 林蚩正受恩典者の健康狀態  恩赦狀下付の手續を了るや受恩典者一同を別室に導き逐次健康診斷を行ひたるに其の體量比較は左の通にして一般に榮養佳良なるを認む大正 三年(1914) 二月 十八日 大邱監獄より當監に移監收容時の體量  一二貫五○○  一六, 七五○  一三, ○五○  一三, 一○○  一六, 九○○  一三, 五五○大正 四年(1915) 二月 十三日 出獄時の體量  一三貫○○○  一七, 三五○  一三, 三○○  一三, 五○○  一六, 六○○  一三, 二五○增△減姓名  五○○ 尹致昊(윤치호)  六○○ 安泰國(안태국)  二五○ 林蚩正(임치정)  四○○ 梁起鐸(양기탁)  △三○○ 李寅煥(이인환, 이승훈)  △三○○ 玉觀彬(옥관빈)

    4 4. 陰謀事件受刑者 特赦

    陰謀事件受刑者特赦前古未曾有의 恩典聖恩如天尹致昊(윤치호)·李寅煥(이인환, 이승훈)·梁起鐸(양기탁)·玉觀彬(옥관빈)·安泰國(안태국)·林蚩正(임치정) 六名 刑期免除  總督謀殺未遂事件에 關하여 京城監獄에 拘禁中이던 懲役囚 尹致昊(윤치호)·李寅煥(이인환, 이승훈)·梁起鐸(양기탁)·玉觀彬(옥관빈)·安泰國(안태국)·林蚩正(임치정) 六名은 今般 寺內(사내정의) 總督의 上奏에 依하여 特赦의 恩典을 蒙하고 去十三日 午後 四時四十分 同監獄에서 國分(국분삼해, 고쿠분 산카이) 高等法院檢事長 神野(신야, 칸노) 總督府事務官其他 監獄職員이 列席한 後三井(삼정, 미츠이) 典獄이 恩赦狀을 讀聞하고 此를 交付하였는데 總督은 特赦施行에 對하여 別項과 如히 三井(삼정, 미츠이) 典獄에게 訓示한즉, 同典獄은 此訓示에 基하여 特赦의 聖旨를 傳達하는 同時에 懇篤히 訓諭한 바가 有하였고 次에 國分(국분삼해, 고쿠분 산카이) 檢事長은 更히 彼等의 非常한 天恩을 浴한데 對하여 別項과 如히 諭告한 바가 有하더라. 受恩典者 一同은 처음으로 式場에 臨함에 何故인지 全然 不知러니 特赦狀을 讀聽함에 此를 受領하였던지 玆에 無限의 歡喜가 顔面에 溢하고 無窮한 聖恩에 感激하여 恐懼莫措하다가 欣悅의 淚와 敬虔의 狀은 殆히 形喩키 難하며 式을 閉하고 臨席各員이 順次退去하여 장차 彼等을 別室로 導코자 함에 突然히 放聲大哭하며 開口呆然하니 是는 感激함이 極度에 達한 所以요, 特히 恩赦狀受領後의 彼等에 對한 戒護刑務官吏의 言語가 突然히 一變하여 普通人에 對함과 一般이오, 服裝을 改하고 ●族과 相語하는 自由를 得함에 至한즉 實로 其間이 數十分時가 못되어 正히 ●●의 差異가 有한 恩赦의 効果가 著明偉大함을 感悟하고 皆手舞足蹈에 莫知所爲러라. 且 尹致昊(윤치호)는 今後 京畿道 京城府 堅志洞에 歸住하여 農業에, 李寅煥(이인환, 이승훈)은 平安北道 定州郡 葛山面에 歸住하여 農業에, 梁起鐸(양기탁)은 平安南道 江西郡 雙龍面에 歸住하여 殖産事業에, 安泰國(안태국)은 平安南道 平壤倉田里에 歸住하여 商業에, 林蚩正(임치정)은 平安南道 鎭南浦府 碑石里에 歸住하여 農業에, 玉觀彬(옥관빈)은 平安南道 中和郡 東頭面에 歸住하여 商業에 從事하는 等 各 正業에 從事하기로 自言하였더라.特赦에 對한 總督의 訓示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은 我朝鮮倂合(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의 眞意를 了解치 못하고 此로 因하여 朝鮮人民은 頓然히 悲境에 沈淪한다고 誤想憤慨하여 明治 四十三年(1910) 九月부터 十二月까지 朝鮮總督을 暗殺하여서 國內의 人心을 刺戟하며 兼하여 世界의 同情을 喚起하려는 謀計를 計劃하였으나 遂히 其 目的을 達하지 못하고 處刑을 受하여 各 懲役 六年에 處하였더니 昭憲皇太后大喪에 當하여 刑期 四分의 一의 減刑恩典을 受하였으나 尙且 今後 二年 九個月 餘 卽 大正 六年(1917) 十一月 二十四日에 至하여 刑期滿了될 者이더니 右等囚徒는 爾來謹愼하여 獄則을 遵守하고 衷心으로 改悛의 狀이 有하므로 我 天皇陛下께서는 至仁하신 叡慮로써 今回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의 情狀을 愍憐하사 特赦의 恩典을 下하옵셨는데 其中에는 先覺者로 自處하여 名聲을 內外에 博한 者가 不無하여 其言動의 影響이 不少하다 認하므로써 特赦의 聖旨를 傳하고 此를 執行함에 當하여 特히 懇切한 誡告를 加함을 要하며 今에 則新政實施 以來로 殆히 五周年에 至한지라 拓地撫民의 皇化가 一般에 徹底하고 人心이 漸次 靜穩에 歸하였으나 間或頑冥不靈하여 朝鮮統治의 眞意를 了解치 못하고 國外에 逃走하여 非謀를 講하며 不穩한 言動을 逞하는 者가 有할 뿐 아니라 國內에서도 此輩의 誑惑을 受하여 架空의 妄想을 抱하는 者 不無●나 然이나 朝鮮統治의 基礎가 旣히 確立한 今日에 如何한 陰謀를 企圖하여 假令幾次라도 總督을 殺害하나 大局에는 秋毫의 影響이 不及할 것이오. 但其 結果는 政府로 하여금 不得已 警備를 嚴重케 하며 從하여 國民融和의 政策에 支障을 與함에 不過하여 其寸益이 無하고 反히 不測한 禍를 釀함은 明若觀火한 事이라. 大抵 朝鮮은 일찍 秕政의 弊를 受하여 網紀가 弛廢하고 民衆이 疲憊에 陷하였더니 今에 百度更張하고 回復秩序하여 國利民福의 增進을 見함에 至함은 一은 新政의 惠澤에 因치 아니함이 無하고 且朝鮮에 對한 施政方針은 他國이 其殖民地에 對함과 如히 此로써 屬地隸民을 삼고자 함이 아니라 斯士를 開拓하고 斯民을 扶掖하여 共히 此를 文明의 域에 進하고 帝國의 版圖臣民으로 하여금 彼我의 安寧幸福을 計함에 在함은 屢屢宣明 하였을 뿐 아니라 五年間 施政의 實績에 徵하여 瞭然한지라.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은 其智能이 元來 此間의 眞相을 透觀하기 足한 것이요, 且旣히 前非를 悔하여 改過遷善의 實을 擧함을 鑑한 즉 其出獄後는 謹愼自持하여 再次 其方向을 誤하는 事가 無할 뿐 아니라 반드시 正道에 就하여 順良謹直한 人이 되어 無限한 天恩에 報答할 誠意가 無함이 不可한지라. 貴官은 特赦의 聖旨를 傳達함에 當하여 如上의 旨趣로 懇篤한 誡諭를 與할지어다.聖恩을 報答하라檢事長의 諭告  尹致昊(윤치호) 以下 六名의 特赦에 對한 國分(국분삼해, 고쿠분 산카이) 高等法院檢事長의 諭告가 如左.  余는 朝鮮總督府 司法部長官 國分三亥(국분삼해, 고쿠분 산카이)이라. 余本官은 高等法院檢事長인데 今日은 寧히 高等法院檢事長의 資格으로 此式場에 臨席한 所以이라. 由來로 某一國이 他國을 攻略하며 又는 一國 內에 革命의 動亂이 勃發하는 等의 境遇에 對하여는 其勝者는 前朝의 臣民에 對하여 峻烈한 迫害威壓을 加함이 殆히 ●免한 事例가 有하니 如斯함은 攻略革命의 境遇以外 朋黨의 政權爭奪에 對하여도 亦如上의 實例가 不少한지라. 吾人은 朝鮮近代에 對하여 幾多의 例證을 記憶하거니와 日本 帝國이 韓國을 倂合(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함은 敵國을 攻略覆滅함과 如한 者가 아니오. 其時의 兩國政府가 平和로 相互協約한 結果이니 兩國生民의 安寧秩序를 永遠히 保持하여 國利民福을 增進코자 하는 目的에 不外한 고로 總督政治의 根本方針은 朝鮮의 民衆을 愛撫誘掖하여 日鮮의 生民으로 하여금 共同히 文明의 德澤을 受하되 皆  天皇陛下의 赤子로 至仁至慈하신 惠澤에 浴케 함에 在한데 此 根本方針의 趣旨를 誤解하고 時勢와 背行한 結果로 刑辟에 觸함에 至하여 一同의 犯罪情狀이 輕치 아니한즉 法律의 正條를 照하여 極刑에 科한 犯罪나 裁判所에서는 前述한 韓國倂合(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의 趣旨及總督政治의 根本方針을 體하며 一同의 犯罪行爲에 至한 動機에 酌量할 點이 有한 바를 認해야 極度로 輕減을 刑罰에 科한 事實은 一同이 知悉하는 바이거니와 一同은 入監以後로 獄則과 規律을 遵守하며 官吏의 命令을 服膺하여 改心의 狀이 顯著함이 有한 故로 總督閣下는 特赦를 奏請함에 至하여 玆에 至仁至慈하신 天皇陛下께서는 特典으로써 特赦의 恩典을 下하심이라. 元來 恩赦는 一은 大權의 發動으로 何人이든지 容喙치 못한 바는 勿論 司法權의 獨立을 確保한 今日에 皇室의 慶事 又는 大故가 有한 境遇 以外에는 絶無한 事인 故로 往時朝鮮에서 朝에 刑을 加하고 夕에 赦함과 如한 事例에 比較하고 今回의 特赦를 考察하면 甚히 恐懼不堪할 바이라. 一同은 今에야  陛下至仁의 叡慮에 依하여 非常稀有한 恩赦에 浴한 바인 故로 出獄後는 格別한 覺悟와 赤誠으로써 聖旨의 萬一을 報答함이 可하나 然이나 人心은 不可測이라 不逞頑迷의 徒가 誘惑曲導가 無키 難한 즉 自今으로 一同은 懇篤히 特赦의 御旨를 諒得하여 毫末의 違反이 無함을 期할 것이라. 今日은 土曜日에 當하고 時已午後 五時에 過하였으나 明日은 陰曆元日에 相當하므로써 一家團樂으로 元日을 迎하며 將來를 祝케 하는 意로써 特히 本日式典을 擧하기에 至하였노라. 且典獄의 訓示와 如히 生活狀態變化에 依하여 身體에 異常이 有함과 如한 事가 有하면 實로 遺憾이니 十分 攝生에 注意하여 今日의 聖意에 對하여 奉答이 有한 바를 覺悟할지어다.  (以上 十三日號外再錄)

    5 5. 尙在夢中

    尙在夢中血色좋은 梁起鐸(양기탁)氏오래간만에 고향에  북부간동 그 첫날 이혁(謙洞 李赫)씨의 집에 양기탁(梁起鐸) 씨를 찾았더라. 한번 보매 어제까지 옥중에서 세월을 보내던 사람 같지 않게 혈색이 좋은 양(양기탁)씨는 그 형형한 안광으로 기자의 얼굴을 보며 말하여 왈 「감옥에서는 혼자 있는 방에 있어서 비상한 후대를 받았고 규칙 있게 생활하는 것은 나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여 보시는 바와 같이 병은 범접치 못하였고 또 간수장도 위로를 잘하여 무엇이든지 청원할 일이 있으면 주선하여주마는 말을 들었지마는 나는 그 호의를 사례하고 한 번도 청원한 일은 없었고 항상 방안에서 글을 읽고 간혹 궐련초의 지물뿌리를 만든 일이 있었을 뿐이라. 이번의 특사는  특사 중의 특사로 우리들은 은명을 받을 때에 말도 나오지 않도록 감격하였노라. 나는 사십여 년의 생활 중에 아직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처자와 같이 일가 단란한 가정의 낙을 본 일이 없었지마는 일간고향…평안남도 강서…으로 돌아가서 오래간만에 모친에게 문안도 하고 사랑하는 아들도 만나 보고자 하노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째 꿈속 같은 생각이 나노라.」하더라.

    6 6. 朝鮮人ノ近狀ニ關シ報告ノ件

    秘受6753號文書課長 大正六年(1917)六月二十七日接受大正六年(1917)六月二十六日接受 主管政務局 第一課機密第三四號大正六年(1917)六月二十日在浦潮斯德總領事菊池義郞●送付大正六年(1917)六月二十七日 機密送第三六號 大正六年(1917)六月二十七日發送濟外務大臣法學博士子爵本野一郞殿朝鮮人ノ近狀ニ關シ報告ノ件一、李甲ノ死ト現在ノ排日鮮人巨魁在「ニコリスク」市ノ排日鮮人李甲ハ數年來病氣ノ處六月十三日死亡セル旨情報ニ接セリ排日鮮人ノ巨魁ト認ムヘキモノノ內本年ニ入リテヨリ金道汝、李相卨、李甲相次テ死シ現在ニ於テハ李東輝、李鍾浩、李剛等ヲ以テ彼等ノ頭目ト爲セトモ李東輝ハ獨探ノ嫌疑ニテ浦潮衛戍監獄ニ囚禁セラレ李鍾浩ハ上海ニ於テ同地帝國總領事館ノ手ニ逮捕サレタルニヨリ現今彼等仲間ニテ無事他ニ未タ十余●アリナルハ在「チタ」市ノ李剛ノミトナレリ一、朝鮮人ノ新聞紙發行計畵本件ニ關シテハ五月十五日附機密第二六號ヲ以テ曩ニ及報告置候處新韓村ニ於テ發行ノ分ハ一株拾留ノ株式トシテ募集中ナルカ旣ニ應募二百二十三株ニ達シタレハ金高五千留ニ及フヲ待テ石版摺新聞紙ヲ發行シ一面間島所在ノ活字機械類ヲ取寄セントシツツアリ又之レカ主筆トシテ元京城『每日申報』記者タリ後陰謀事件犯人トシテ處罰サレシ梁起鐸ヲ西間島ヨリ招致セントシ崔竹亭、金學萬、金致寶、崔才亨、車錫甫、崔萬學、尹能孝、蔡成河等ノ徒專ラ幹旋シ發刊主旨書ノ發送ニ着手シツツアリ金顯土一派ノ『極東公報』ハ其後『極東月報』ナル月刊雜誌ニ改メ石版摺リトシテ近ク發行ノ豫定ナリ別ニ「ニコリスク」國民協會大會ニテ發行計畵ヲ學セル新聞紙アレトモ其後ノ狀況未タ明ナラス以上三種ノ刊行物中金顯工等ノ『極東月報』ハ本人等ノ言ニ據レハ純然タル實業雜誌ニシテ購讀者ヲ廣ク朝鮮內地ニモ求ムル目的ナル由又國民協會ノ分ハ露國ニ歸化セル朝鮮人ノ機關紙ナルヲ以テ何レモ大害ナカル可シト雖モ唯新韓村ニ於テ發行サレシトスル分ハ曩ニ禁止サレシ『勸業新聞』、『大洋報』ノ後身ニシテ排日的新聞ナルシト目セラル然レトモ在留鮮人ノ大多數ハ低級ナル農夫勞働者ナルヲ以テ此等ヲ購讀者トシテ三個ノ新聞雜誌ヲ一時ニ發行スルトモ果シテ永續ノ見込アリヤ疑ハシク且ツ資本ノ如キ固ヨリ豊ナルニ非ラサルヘケレハ是等前途ノ經營難ハ略推知スルコトヲ得人ヲ右御參考迠報告申進候敬具寫送附先在露大使哈尔賓總領事代理間島總領事代理

    7 7. 浦潮情報

    秘受0042號大正七年(1918)●月●日接受 主管政務局 第一課大正六年(1917)十二月二十八日朝憲機第四○四號浦潮情報浦潮派遣員報告一、李東輝ノ近情ニ關スル件右者本年四月中旬浦潮新韓村ニ於テ獨探ノ嫌疑ニ因リ露國官憲ニ逮捕セラレ其ノ後轉轉シテ「アレクセーエフスク」市監獄ニ收容セラレ居タルカ最近ニ至リ釋放セラレタリ十一月二十六日夜「ハバロフスク」ヲ經テ浦潮ニ來リ新韓村民會長李亨郁方ニ潛伏シ同志崔秉琡及韓人新報社等ヲ訪問シタル外一切行動ヲ秘密ニシ居タルカ十二月十五日突然浦潮ヲ發シ「ニコリスク」ヲ經テ吉林省穆稜縣八面屯ノ自宅ニ向ヒタリト同人ハ在露鮮人軍人ノ運動ニ依リ一時保釋ヲ許サレタルモ未タ全ク自由ノ身トナリタルニアラサル旨洩シ居タリト然ルニ十一月二十九日「ハバロフスク」露國外交事務官「クーレンコフ」ク浦潮ニ來リ菊池總領事ヲ訪問セシ際李ノ釋放ハ甚ク信シ難ナ說ナリトテ否認シタリ李カ巧ニ支那領ニ遁レタルハ全ク日露官憲ノ逮捕ヲ避ケタルモノト察セラル二、梁起鐸ノ行動ニ關スル件大正元年陰謀事(1917)件ノ關係者梁起鐸ハ十二月八日浦潮ニ到着シ新韓村姜良五方ニ寄寓シ居レリ同人ニ對シ十二月十日李亨郁、金致寶、李東輝、金秉哈等發起トナリ姜良五ノ私宅ニ於テ歡迎會ヲ催セリ出席者ハ發起者ノ外金河球金震南公善金秉權李可順、蔡成河、吳昌煥等男女四十八名ニシテ同日午後七時ヨリ翌午前二時ニ亘リ李東輝外各會代表者等十餘名ノ激烈ナル排日演說アリ終ニ梁ハ在露領同胞ノ協力同心シテ最後ノ目的ニ邁進セムコトヲ希望スル旨演說セリ參會者ノ言ニ依レハ本會ノ爲臨時集メタル寄附金三百八十餘元ニ達シ日韓倂合後未曾有ノ盛會ナリシー以上報告通報先總督 政務總監 總務局長 陸軍大臣 參謀總長 關東都督 軍司令官 師團長 憲兵司令官 內閣書記官長 拓殖局長官 外務次官 鏡城·咸興·義州·京城憲兵隊長 間島派遣員

    8 8. 양기탁 씨의 문장출세

    양기탁 씨의 문장출세…『한인신보』가 빛이 난다.  냉육철창에 十년 풍상을 겪음으로 더욱 문장의 굳센 힘을 단련한 전 『매일신보』 총무 양기탁 씨는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한인신보』의 편집인으로 청빙함을 허락하여 근일 길림으로 부터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하였다더라.

    9 9. 양기탁 씨를 환영

    양기탁 씨를 환영…각 단체간 연합하여  우강(양기탁) 선생 양기탁 씨의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한인신보』에 응빈은 본보 전호에 게재한 바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한인 각 단체는 작년 十二월 十五일 연합 대환영회를 열어 선생의 진중한 허락을 감사하였다더라.

    10 10-1. 한인사회당 적위군|| 10-2. 망명자의 수기

    朝鮮人ノ近狀ニ關シ報告ノ件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36, 191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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