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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안창호] 에 대한 전체 2918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2.6.19)

    상해 일본 영사관에서 편지한 것을 보셨겠는 고로(보았을 테니) 긴 말씀을 아니 합니다. 이달 초 七일에 조선 경성(서울)에 와서 경기도 경찰부에 유치되었나이다. 이곳 경관들이 특별히 동정하고 우대하므로 매우 편히 지내고 또는 내 평생에 과격한 동이 직접 간접간 도무지 없었으므로 오래지 아니하여 나올는지도 모르겠나이다. 부탁할 말씀은 당신이나 누구든지 조선에 오지 마시오. 장차 내가 나온 후에 서로 만날 것을 경영하겠나이다. 아무쪼록 안심하시오. 나의 사랑하는 아내

    2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3.6.1)

    (수산이가 이 선생께 편지한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고 하시오.) 당신이 경성 서대문 형무소로 두 번 보낸 편지를 다 반가이 받아 보았나이다. 이 형무소의 법규가 두 달에 한 번씩 편지하는 법인데 다른 곳에 편지하는 때에는 당신한테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왕에도 말하였거니와 내가 평생에 당신에게 기쁨과 위안을 줌이 없었고 이제 느지막에 와서 근심과 슬픔을 주게 되오니 불안한 마음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가사와 아이들에 대한 모든 시름을 늘 혼자 맡게 하니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내가 조용한 곳에 홀로 있어 평소에 그릇한 여러 가지 허물을 생각하고 한탄하는 중에 남편의 직분과 아비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 또한 스스로 책망하는 조건입니다. 또는 당신 이외에 미국에 체류하는 여러 친구와 동포들이 나를 동정하여 걱정들 하심에 대하여 황송하옵니다. 그간에 집안에 별고 없으며 삼촌 댁과 영호(안영호) 동생 부부와 아이들이 평안하고 여러 친구들이 다 태평합니까. 여러 곳에 각각 편지하지 못하니 당신이 대신 문안하여 주소서. 차군과 에더 혼인에 대하여 기뻐 축하하옵니다. 아주머님이 정 목사 편에 미화 십 불(조선 돈으로 사십 원) 보내신 것을 감사하다고 말씀하여 주시오. 나는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 있을 때에도 지난 겨울 특별히 추울 때에 얼마 동안 추위에 곤란을 다소 받았으나 다른 괴로움을 받은 것이 별로 없었는데 지난 三월 二十八일에 이 대전형무소로 이전하여 온 후로 더욱 평안히 지내오니 나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시오. 유숙하는 감방도 매우 정결하고 광선과 공기가 잘 통하며 음식도 비록 간단하나 매우 정결하고 매일 삼시로 더운 햇밥을 주니 위생에 합당하고 구미에도 맞아서 잘 먹습니다. 또는 경성이나 이곳에서 다 아직 괴로운 별 사건을 당함이 없었나이다. 당신의 개성이 본래 겁나하지 않고 담대한바 내가 이 경우에 처한 것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집안일을 돌아보며 아이들을 교양하는 데 수고하는 것으로 낙을 삼으시오.당신이 만일 수심하는 빛을 늘 띠고 있으면 집안에 화기가 없어지고 따라서 아이들의 신체발육과 정신발달에 큰 영향을 줄 터이니 내게 관한 모든 것은 아주 없어진 양으로 일소하여 버리고 가정에 유쾌한 공기와 아이들의 활발한 기상을 만들기로 주의하시오. 당신이 三十여 년 전, 즉 청년시대에 샌프란시스코 파인스트리트 일인 보딩하우스(San Francisco Fine Street one-man boarding house)에서 나의 장래를 예언한 것을 기억합니까. 또는 구년 전에 미주에서 작별할 때에 이번 작별은 무슨 작별이라고 말씀한 것을 기억하겠지요. 그런즉 당신은 그리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할 것이 없이 탄평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교양함에 전심하소서. 내 친구 중 나보다 먼저 세상을 작별하고 간 사람이 얼마입니까. 나의 남아 있는 운명은 알 수 없으나 설혹 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한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나의 장래는 자연에 맡기고 다만 평소의 지은 죄과를 참회하고 심신을 새로이 단련하여서 옥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어디서든지 남아 있는 적은 시간을 오직 화평한 마음으로 지내려고 스스로 준비하고 힘씁니다. 당신께 몇 가지 말씀할 것은 一. 아이들 혼인에 대하여는 필선은 아직 문제가 안 될 것이고 수산과 수라의 혼인이 염려입니다. 미주 우리 사회에 혼인의 문이 넓지 못한 바 실지로 혼처를 구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형세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감독하는 밑에서 저희들이 자유로 선택할 터인데 아이들에게 선택할 지식을 먼저 지도하여 주시오. 특별한 사람을 구할 것이 없고 직분을 존중히 하고 직업을 사랑하는 근실한 사람이면 만족한 줄로 아시오. 그중에 필립의 혼기가 너무 늦은 것이 유감입니다. 그러나 이미 늦어진 바에 좀 더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내가 만일 죽지 않고 나가게 되면 내가 나가서 주선하는 것이 나을까 함이외다. 나의 나아갈 형기가 1936년 十一월 六일인즉 앞으로 三년 五개월이 남았나이다. 三년 시간이 잠깐 갈 터이니 기다림이 좋을까 합니다. 一. 집안생활에 대하여는 본래도 곤란한데 지금 특별히 불경기의 시기에 처하여 여북 곤란하리오. 그러나 이것도 평생을 받아오는 바 견디는 힘이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필영이를 제한 외에 네 아이는 무엇을 하든지 거리에 나가 신문지를 팔더라도 죄다 일 전씩의 벌이라도 버는 일을 실행케 하고 이 불경기 시기를 이용하여 절용을 공부하게 하소서.一. 필립이가 장사를 못하고 남에게 고용하는 바에 할 수 있으면 그곳 포드 자동차 회사에 상당한 직업(job)을 얻어서 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것은 장래에 동양으로 건너와 살 경우에는 동양에 있는 그 회사의 일을 얻어가지고 와서 살기에 용이할까 함이외다. 그 애 외삼촌 두성(이두성) 군은 매일 五원씩 받고 그 포드 회사에서 일하므로 돈을 저축하면서 잘 지냅니다.一. 윤진오 군이 필립과 같이 무슨 영업을 하기 위하여 자본을 보내라 하였는데 그것을 시행치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돈과 동양 돈이 엄청나게 가계가 되는 때에 있어서 동양에 있던 돈을 미국으로 가져가면 여간한 큰 손실이 아니니 그 돈은 아주 없어진 셈치고 기다려서 미국과 동양의 경제 융통의 형세가 원상대로 된 뒤에 이러나저러나 하여야 하겠고 또 그 돈에 대하여는 추호도 염려하지 마시오.一. 필선의 수학을 원조하신 단소 여러분께 감사한 뜻을 대신 말씀하시고 저금동맹을 다시 실행하기로 힘쓰기를 원한다고 하소서. 내종으로 당신께 다시 고하옵는 말씀은 인생이란 것이 본래 장생불사하는 물건이 아니고 누구나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바이요, 또 사는 동안이 매우 적은 것입니다. 나나 당신이 다 인생의 하나(으)로서 세상에 와 있는 동안 잘 지냈거나 못 지냈거나 삶의 시간이 거진 다 지나갔고 이제 남은 것이 많지 못합니다. 이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나는 나의 지나간 역사의 그릇된 자취를 더듬어 보고 양심에 책망을 받으므로 비상한 고통을 때때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지나갔으니 후회막급으로 생각하여도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런즉 지나간 모든 것은 다 끊어 보내어버리고 오직 남아 있는 적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함이외다. 옛날 그릇된 자취를 다시 아니 밟겠다는 결심은 물론이지마는 새로 밟아갈 것이 무엇일까 함이외다. 아무 별것이 없고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 이것이 인생의 밟아 나아갈 최고 진리입니다. 인생의 모든 행복은 인류 간 화평에서 나오고 화평은 사랑에서 나는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지로 경험하여 본바 어떤 가정이나 그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면 화목하고 화목한 가정은 행복의 가정입니다. 그와 같이 사랑이 있는 사회는 화평의 행복을 누립니다. 「사랑」을 최고 진리로 믿고 사랑을 실행하는 사람의 사랑으로 인하여 가정이나 사회에 화평의 행복이 촉진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정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사랑을 믿고 사랑을 품고 사랑을 행하는 그 사람 자신의 마음이 비상한 화평 중에 있으므로 남이 헤아리지 못할 무상한 행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즉 나나 당신이 앞에 남아 있는 시간에 우리 몸이 어떤 곳 어떤 경우에 있든지 우리의 마음이 완전히 화평에 이르도록 「사랑」을 믿고 행합시다. 내가 이처럼 고요한 곳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결과 오직 「사랑」을 공부할 생각이 많아지는 동시에 이것을 당신에게 선물로 줄 마음이 있어서 「사랑」 두 글자를 보내오니 당신은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이 옥중에서 보내는 선물을 받으소서. 이것을 받아가지고 우선 집안 자녀들을 평일보다 특별히 사랑하는 화평의 기분으로 대하며 삼촌 댁과 사촌 집 친족들이며 그 밖에 친구들한테 평시 감정을 쓸어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대하기를 시험하소서. 효과가 곧 날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자비의 정신을 품고 대하기를 공부하여 보소서. 말이 너무 길어지므로 그만 그칩니다. 아이들한테도 자주 편지하고자 하나 형편이 허락지 않습니다.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은 평시보다 더욱 간절합니다. 그중에 필영이 생각이 더 많습니다.

    3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2.10.14)

    그동안에 나를 위하여 얼마나 근심하며 고통으로 지내옵니까. 내가 상해에서 와 경성에 온 후에 부친 편지를 다 받아보았는지요. 나를 위하여 과히 염려하지 마시오. 지금의 조선 형편이 당신이 미주에 있어 재래에 생각하던 형편과는 많이 다릅니다. 악형을 하거나 무엇을 억지로 하는 일이 없고 구류한 감옥도 옛날 것과 같지 아니하여 편히 유하고 의복과 음식을 다 밖에서 들여오는 고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독립문 밖 무악재 밑인데 풍경과 공기가 매우 좋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한번 당신을 위로하고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보기 위하여 건강에 많이 주의합니다. 아무 근심 말고 기다리시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입니다. 벌써 반년은 다 갔습니다. 조선에 있는 친족들과 친구들이 정성으로 돌아보고 관리들도 많이 동정하니 실로 괴로움이 없습니다. 당신은 아이들 데리고 평안히 지내시고 아이들의 감정을 상치 않도록 주의하시오. 미주에 있는 친족들과 이웃이 특별히 친애하고 화기롭게 지내기를 멀리(서) 비옵니다.

    4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4.1.27)

    5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4.10.1)

    6 Alice가 안수산에게 보낸 안부 편지

    수지(Susie)에게,너에게서 연락을 받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너의 기억에서 나와 우리 가족이 모두 지워졌다고 생각을 해왔단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 왜냐하면 너와 너의 가족이 미국에 있는 나의 유일한 친척이잖니. 그리고 지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고 말야.우리 모두가 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단다. 내가 그걸 말로 적기 시작한다면 끝이 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 마음에 들 때까지 실컷 이야기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기로 하자.네 아버지가 너희들 모두를 무척 사랑했고, 또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렴. 네 아버지가 너희들 이야기를 늘 나에게 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단다. 그는 나에게 소문을 말해줬단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 그 소문을 무시해버렸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 순전히 질투 때문에 그렇게 수근거리는 거라고 하셨단다. 실제로도 그랬고. 너희 아버지는 너희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셨어. 지금 나는 확신한단다. 그 분이 뭔가를 알고 계시고, 살아있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보살핌과 애정으로 너희들을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이야. 그러니 고개를 들고 살도록 해라.나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네 아버지 사진은 없고 너희 사촌 사진만 있단다. 네 사촌은 지금 서울에 있는 보성학교에 다니고 있지. 그가 네 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즉시 너에게 보낼 것이다. 속히 받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네 아버지는 “새벽에 눈을 감은 장군”에서 필립(Philip)을 보셨단다. 그리고 아주 기뻐하셨지. 그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실 때는 “대지(Good Earth)”가 상영되었지. 나는 네 아버지가 그 영화를 보실 수 있기를 바랬단다. 특히 필선(Philson)을 말야. 또 “밀항자(Stowaway)”라는 영화도. 그는 나에게 영화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내가 최선을 다해 한국어 실력을 동원하여 알려드렸지. 아버지는 매우 좋아하셨단다. 비록 내가 영화 장면 장면을 직접 연기해 보여야 하긴 했지만 말야. 그는 웃었고, 나보고 영화배우를 해도 되겠다고 하셨지. 하! 하! 우리는 모두 웃었단다.어머니께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라고 전해드리렴. 우리는 그 분이 하신 모든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단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용감함을 칭찬하고, 최고로 존경하며, 늘 선행을 하시리라 희망한단다. 그래, 너는 U. S. C.에 재학중인거구나. 정말 잘되었다. 적어도 가족 중 한 명의 여성은 우리의 오해를 바로잡아야지. 필선(Philson)이 U. C.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기쁘다. 와! 정말 시간은 빨리도 흘러가는구나. 나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너희들은 모두 커서 젊은이들이 되었구나.스탠리(Stanley)는 세 살이고 조앤(Joan)은 2학년이란다. 걔들은 한자는 물론이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말하고, 읽고, 쓴단다. 믿건 믿지 않건 간에 말야. 나는 그저 앉아서 먼지를 먹고 있지. 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일본어를 머릿속에 도저히 집어넣을 수 없을 것 같아. 장을 보러 나가면 아이들은 일본어를 막 떠드는데, 나는 서서 떠듬거리며 말하고 있어.우리는 건강을 위해 아주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어. 아무 데도 안 돌아다니고, 그저 영화관이나 언덕에 산책을 갈 뿐이지. 살만한 것 같니? 스스로 약해지지 않고, 또 역경이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견딜 수만 있다면 훌륭한 생활이라고 봐. 와! 그래도 즐거운 브로드웨이와 그곳의 공연들은 그립구나. 조만간 너희들을 갑자기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놀라게 해줄 거야. 빨리 그렇게 되어서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구나. 그래도 포기하는 게 낫겠지. 소용이 없으니까. 그저 나를 약하게만 하는구나.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입고 머리치장을 하는데 아주 현대적이고 최첨단의 유행을 따라간다는 걸 알면 놀랄 거야. 사실, 아주 최첨단이지. 처녀들은 직업 댄서들처럼 하고 다니고, 총각들은 꼭 필리핀 사람 같단다.일본 시가지, 한국 시가지, 외국인 구역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미인들이 넘쳐난단다. 가장 믿을만한 장소는 백인 러시아 여성이 운영하는 곳인데, 15엔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곧 영업을 못하게 될 거야. 그리고 머리를 곱슬거리게 하는 것도 불법이 된다고 하는구나. 춤추는 것도 금지되고. 물론, 한국에서는 한번도 허가된 적이 없었지. 그런데도 모든 젊은이들이 춤출 줄 안다니 놀랍지 않니. 그들은 탱고나 블루스를 춘단다. 일본에는 전문댄스를 둔 댄스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곧 법으로 금지될 거야. 인생이 다 그렇지.가족들께 우리 안부를 전해드리도록 하고 너에게서 다시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바란다. 안녕,(서명)

    7 安麥結이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2.11.24)

    8 安麥結이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2 - 1933)

    오랫동안 소식 몰라 답답하던 중에 김유성 씨를 통하여 최근에 서신 한 소식을 듣고 안심합니다. 물론 경제의 고통은 말할 수 없겠지마는 동생들이 학업을 계속한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숙모님 존체 만강하시고 동생들도 건강한지요.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필립이는 어떤 상점에서 서기 일을 본다지요. 질녀는 십여 일 전에 경성 가서 숙부님을 면회하고 왔는데 일주일 동안 병중에서 심히 고통을 하느라고 지금까지 상서치 못하고 있다가 조금 차도가 있지마는 아직 병중에서 간단히 소식이나 전하려고 합니다. 비교적 육신이 건강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치아가 잘리지 못한 관계로 소화불량이 아직도 있다고 하십디다. 특별히 미주와 상해 소식을 물으시기에 다 평안하시다고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히 필립의 혼인기가 멀어가는 것을 퍽 염려를 하십디다. 미주에서 가합한 여자가 있어서 약혼을 한다면 별문제고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내가 조선 안에서 많이 지내 본 여자 중에 가장 덕이 있는 여자를 택해서 사진 교환으로 피차 교제하고 서로 합당히 생각되면 미주로 女子를 가게 하여 혼인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숙모님께 편지를 하여 좋도록 상의해서 잘하라고 부탁을 하시는데, 할 수 있는 대로 그 말씀을 신중히 생각하여 잘 실행케 하는 것이 숙부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상해에 있는 물건은 숙부님이 출옥하셔서 가져올 것만 가져와야 되겠다고 그냥 그대로 두어두라고 말씀하십디다. 정남수 목사는 五月에 다시 미주에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 아시고 안심하시옵소서. 아무리 근심 걱정한들 안 숙부님의 고생을 백분의 일이라도 덜어드릴 수는 없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것뿐입니다.내가 면회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상하였지마는 이번처럼 마음이 상하고 쓰린 것은 처음입니다. 머리는 다 밀고 옷은 감옥 옷, 붉은 옷을 입으셨는데 어찌 기가 막혔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숙모님이나 동생들에게 급한 것은 한없겠지마는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보는 편보다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도 저는 감옥을 다녀서 그런지 신경이 아주 나빠져서 아주 성질이 고약한 놈이 되었습니다. 신경이 아프고 흥분된 것을 참고 참았더니 경성 갔다 와서는 신경통과 감기로 인하여 심히 고통하였었습니다. 온몸이 하늘에 번개질하는 모양으로 쏘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고로 오늘까지 상서치 못하고 있다가 오늘 오후부터야 신경이 쏘는 도수가 차도가 있으므로 병석에서 늦은 글이나마 올리나이다. 유치원 방학은 三月 十八日입니다. 개학은 四月 七日인데 방학 동안 강서군으로 가서 쉬고 오겠습니다. 四月에는 아버님이 면회를 가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온 가정에 평강을 비나이다.

    9 韓國革命領袖安昌浩先生史略

    아아, 혁명 지도자이신 안도산(安島山) 선생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분투하고, 정정 40여 년을 혁명에 애썼으니, 그 업적은 해와 별처럼 찬란하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국민들의 추대를 받아 모든 사람들의 혁명 지도자로서 존경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32년 4월 29일, 상해 법조계에서 일본인에게 호송되어 서울로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석방과 구금을 반복하다가, 금년 3월 10일에 61세의 나이로 옥중 생을 마감하였다. 전국이 슬픔으로 애도하고, 온 국민이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업의 초창기에 선생께서 갑작스레 서서하시니, 조국이 어찌 그 실패를 감당할 수 있으랴. 선생의 업적과 발자취는 다음과 같다.

    10 安聖結이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38.4.22)

    너무도 소식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옵니다. 그동안 이곳 소식을 퍽 기다리셨을 것입니다마는 이번에 불행한 일을 당한 우리 온 집안은 아직도 총망한 중에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목 머심 차시에 주은 중 숙모님 기체 만강하시오며 오라버님과 동생들도 다 평안하신지요. 이곳은 다 무고합니다. 질녀는 늘 몸이 약해서 더구나 병환 중에 계신 숙부님을 대하면 신경이 극도로 쇠약하신 숙부님께 기분이라도 상하시면 어쩔까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숙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결이는 내가 올라오라고 할 때 왔다 가라고 하신다기에 그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종시 살아계실 때에도 한번 못 가 뵙고 이번에 세상 떠나셨다는 전보를 받고는 갑자기 몸이 또 괴로워서 마지막 때에도 못 갔습니다. 부족한 딸은 숙부님을 향해서 죄송함과 슬픔은 저 일생의 가슴에 뭉쳐 있어서 내 머리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이 아플 것입니다. 내 마음에 너무도 슬픔을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이번에 아버님께서 산역하시러 가시기에 저도 같이 가서 분묘나마 보려고 갔다 왔습니다마는 무엇이 시원하겠습니까. 자못 꿈 같을 뿐입니다. 숙부님을 모신 자리는 퍽 훌륭합니다. 서울서 삼십 리 가서 망우리 큰 산 인데 남행 판이고 분묘 아래는 숙부님 계실 때 제일 사랑하시던 아들 같은 유상규 씨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번에 비석을 하려고 하였으나 형편상으로 하지 못하고 나무 팻말에 「島山 安昌浩(안창호)之墓」「死亡日 三月 九日」「祭主 安致浩」이렇게 써서 꽂았습니다. 산역은 괜찮게 한 듯합니다. 무덤은 내게 한 길쯤 되고 좌우로 둘러싸고 분묘 앞에는 장미꽃을 심고 좌우로 향나무와 잣나무, 소나무 등을 심었습니다. 앞뒤로는 진달래와 사철화를 심었고 옆에 화단에는 일년초를 심으려고 합니다. 분묘는 제일 찾기 쉽고 그 자리에 서면 서울 한양이 놓여 있고 앞이 쑥 터졌습니다. 사흘 동안 산역을 하고 왔으나 아직 만족치는 못합니다. 앞으로 아버님께서 좋은 나무를 많이 심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버님께서는 숙부님 돌아가신 후로 퍽 더 늙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버님은 왜 이런 불행한 일만 당하시는지요. 저번에 장례를 하시고 돌아오신 아버님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 가슴 아픔이야 일생에 잊겠습니까. 모두가 일장의 춘몽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숙부님 병원에 계실 때도 여러 번 가셨고 이번 세상 떠나시기 전에도 숙부님께서 오시라고 하여 올라가셨으나 별반 말씀은 없으셨다고 합니다. 형님네 부부는 다 잡혀갔다가 지난 탄일에 형님과 어린 자영이는 나오고 아직 아저씨께서는 못 나오시고 지난달에 형무소로 넘어갔습니다. 형님에서는 이달이 해산달이므로 태생이 되어 장례 때에도 가시지 못하여 더욱 서러워합니다. 드릴 말씀은 많지만 편지로는 다 아뢰지 못합니다. 내내 숙모님 기체 안녕하심과 댁내 평강을 빌고 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