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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박은식] [백암박은식전집5권] 에 대한 전체 1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인물고

    金庾信(김유신)傳  會員 朴殷植(박은식)  金庾信(김유신)은 新羅王京人이니 駕洛國 首露王의 十三世孫이라. 祖는 武力(김무력)이니 新羅新州道行軍總管이 되어 嘗히 兵을 領하여 百濟王을 獲하고 首萬餘級을 斬하다. 父는 舒玄(김서현)이니 官이 蘇判에 至하고 母는 萬明(만명)이니 葛文王子 肅訖宗(숙흘종)의 女라. 舒玄(김서현)이 庚辰夜로써 夢에 熒惑과 鎭星이 降於己하고 萬明이 또한 夢에 童子가 金甲을 衣하고 乘雲入堂함을 見하였더니 이윽고 有娠하여 二十月만에 庾信(김유신)을 生하니 是는 眞平王 建福十二年 乙卯라. 將次 名을 定할 때 謂夫人曰 吾가 庚辰夜 吉夢으로써 此兒를 得하였으니 마땅히 名을 삼을 터이나 禮에 日月로써 名을 삼지 않는지라 庚은 與庾로 字相似하고 辰은 與信으로 聲相近이라. 況古人이 有名庾信(김유신)者라 하여 遂히 庾信(김유신)으로 名하다.  及長에 花郞이 되니 人多服從하여 號를 龍擧香徒라 年이 十七에 高句麗와 百濟와 靺羯이 國疆을 侵軼함을 見하고 慨然히 削平할 志가 有하여 獨行으로 中嶽石窟에 入하여 齋戒告天曰 敵國이 無道히 豹虎가 되어 我의 封場을 擾하여 寧歲가 略無한지라 我는 一介 微臣으로 材力을 不量하고 禍亂을 掃淸하고자 하니 惟天은 降監하사 我에게 假手하소서. 居한지 四日에 忽一老人이 被褐而來하여 曰 此處는 毒蟲과 猛獸가 多하니 可畏之地를 貴少年이 爰來獨處는 何也오. 庾信(김유신)이 其非常人인줄을 知하고 再拜曰 僕은 新羅人이라. 國讎를 見하고 痛心疾首하여 此에 來한 것은 所學이 有함을 冀望함이로이다. 老人이 默然無言하거늘 庾信(김유신)이 垂涕懇請한데 老人이 曰 子의 年이 尙幼에 三國을 統合할 志가 有하니 不亦壯乎아! 秘法으로써 授하고 言訖而法하니 進而望之에 不見하고 山上에 有光하여 爛然若五色이러라. 建福二十九年에 敵患이 愈甚하거늘 庾信(김유신)이 寶劍을 携하고 咽薄山 深壑中에 入하야 燒香祝天을 三日하니 夜에 虛角二星의 光芒이 赫然下垂하고 寶劍이 飛動하는 듯 하더라.  建福 四十六年 八月에 王이 伊飡 任求里(이찬 임구리)와 蘇判 大因(대인)과 舒玄(김서현) 等을 遣하여 高句麗狼臂城을 攻하더니 麗人이 出兵逆擊하니 羅人이 失利하여 死者衆多라. 庾信(김유신)이 時에 中幢의 幢主가 된지라 胄를 脫하고 父에게 告하여 曰 我兵이 敗北한지라 兒가 平生에 忠孝로써 自期하였으니 臨戰에 不可不勇이니라. 乃馬를 跨하고 劍을 拔하여 敵陣에 出入하여 將軍을 斬하고 其首를 提하여 來하니 羅軍이 見之하고 乘勝奮擊하여 五天餘級을 斬殺하고 一千餘人을 生擒하니 城中이 恟懼하여 出降하다.  善德王 十一年에 百濟가 大梁州를 敗하니 金春秋(김춘추)公의 女子 古타炤娘이 其夫品釋을 從하여 死하니 春秋(김춘추)公이 恨之하여 高句麗兵을 請하여 百濟의 仇를 報코저 할 새 臨行에 謂庾信(김유신)曰 吾與公으로 國家의 股肱이 되었으니 我가 若入彼하여 見害하면 公其坐視乎아! 庾信(김유신)이 曰 公이 若往而不還하면 僕의 馬跡이 麗濟兩王之庭을 必踐하리니 苟不如此하면 將次 何面目으로 國人을 對하리오. 春秋(김춘추)公이 感悅하여 手指를 噬하야 歃血以盟하고 曰 吾가 計日하여 六旬에 乃還하리니 若過此不來하면 再見之期가 無하다 하고 相別하다. 後에 庾信(김유신)이 押梁州 軍主가 되었더니 時에 春秋(김춘추)公이 高句麗에 聘하여 六旬을 過하여 未還한지라 庾信(김유신)이 國內 勇士三千人을 揀하여 語하여 曰 吾는 聞하니 見危致危하고 臨難忘身은 烈士之志라 一人이 致死하면 百人을 當하고 百人이 致死하면 千人을 當하고 千人이 致死하여 萬人을 당하면 可히 橫行天下할지라. 今에 國之賢相이 他國의 拘執을 被하였으니 其可畏死하여 不犯難乎아! 於是에 衆人이 皆曰 비록 萬死一生之中에 出하나 敢히 將軍의 令을 不從하리오 마침 高句麗諜者가 其事를 王께 告하니 王이 春秋(김춘추)公을 敢히 復留치 못하고 厚禮로 歸之하다. (未完)

    2 아동고사

    我東古事 三聖祠 會員 朴殷植(박은식)  三聖祠는 文化郡 九月山에 在하니 桓因(환인) 氏와 神市氏(환웅)와 檀君의 祠라. 盖我東邃古之初에 桓因(환인) 氏는 初頭에 出하신 神人이오 神市氏(환웅)의 名은 桓雄(환웅)이니 桓因(환인) 氏의 世子라. 天符三印을 受하여 徒衆三千을 率하고 太白山에 降하셨으니 是는 桓雄天王(환웅천왕)이오 檀君의 名은 王儉(왕검)이니 太白山 檀木下에 降하사 支那唐堯戊辰에 入而爲君하시니 神而有智하시고 國號를 朝鮮이라 하다. 初都平壤이라가 後徙白岳하니 國內의 山川을 治하여 民居를 奠하고 草衣木食과 夏巢冬穴하고 始敎民하여 編髮盖首하며 衣服飮食之制가 有하고 使三子로 三城을 築하여 三郞城이라 名하고(在今江華) 阿斯達山에 入하사 神이 되셨으니 享壽는 千四十八年이라. 江華의 塹星壇은 檀君의 祭天所니 累石으로 築하여 高十尺이오 上方下圓하더라. 權近(권근) 詩에 曰 傳世는 不知幾로되 歷年은 曾過千이라. 松壤西에(今江東) 檀君墓가 有하고 太白阿斯達에 俱有祠하고 唐藏京은 一云藏藏坪이라. 文化郡 九月山下에 在하니라.

    3 선언서

      대한국민의회는 우리 二천만 동포를 대표하여 천하만국에 독립을 선언하노라.  이때 세계가 정의·인도를 표준하며 세계 평화를 주장함에 소위 군국주위와 침략정책은 세계대전의 결국을 따라 소멸되고 인도정의주의와 민족자결주의는 강화회의를 엶으로 인하여 실행될 지로다. 그러면 양의동서와 족의 차별을 물론하고 진실로 자유 독립의 능력이 있는 종족으로 남에게 강제로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된 자는 자유와 독립의 행복을 누릴 것은 세계의 공의와 평화를 위하여 더 말하지 않아도 가히 알바이라. 그러므로 파란(폴란드)·체호(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법국(프랑스)의 알사스(알자즈)·로렌 양 주의 회복은 그 침략됨이 이미 몇 십 년, 몇 백 년이 되었으나 그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됨과 할양됨이 당시 인민의 의사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 인함이니 이로써 보건대 이미 강제로 위력으로 남의 나라를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한 소위 강국은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된 나라에 대하여 독립을 도로 내어놓을 의무가 있고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된 국민은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한 나라에 대하여 독립을 요구할 권리가 있도다.  우리 한국은 일본에 정복된 바도 아니요 할양한 것도 아니라 저의는 사기적 수단과 강포한 병력으로써 강탈한 바이다. 한국의 독립은 저 일본이 먼저 주장하여 승인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가 공인한 바이며 청일전쟁(1894)·러일전쟁(1904)의 그 선언서와 마관(시모노세키)·포츠머스 두 조약[(시모노세키조약, 1895), (포츠머스조약, 1905)]에 볼지라도 조선의 독립과 보전이라는 조문이 명백하거늘 저 고약한 일본은 승전의 나머지 위업을 빙자하고 각종 조건으로써 한국의 외교·사법·경찰 등 권을 박탈하고 인히 한국군대를 해산하여 다시 대항할 힘이 없게 한 후 저의 병력으로써 군주를 위협하며 적신을 농락하여 소위 합병조약(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을 체결한 것뿐이로다.  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 이래로 일본의 우리 민족에 대한 통치정책은 궁흉극악하여 거죽으로는 경제로써 우리의 이익을 도모한다 자랑하여 세계의 이목을 속이고 속살로는 각종 음험한 수단으로써 우리의 민족을 전멸코자 할 뿐이로다. 우리는 이미 참정권이 없으므로 인권의 큰 부분되는 집회·결사·언론·출판의 자유가 없음은 고사를 물론하고 소위 교육제도는 그 시설한 정도가 노예적 교육에 지나지 못하여 우리의 신성한 잣대로 하여금 저희의 개나 말의 역사에 몰아 부치려 함에 지나지 아니하고, 소위 법제는 우리 민족에게 쓰는 특별한 법령과 형벌이 있어 우리의 옛적 윤리를 맞서며 세계에 없는 악형을 써서 다만 우리는 절로 시진하게 할 뿐이로다. 더욱 산업에 대하여는 상공의 큰 규모로 영업을 허락지 아니하며 심지어 농작에도 마음대로 하게 못하여 우리의 산업은 날로 영성케 하고 생활은 때로 절박하도다. 또 예수교는 우리 민족의 문화상 한 생명이거늘 저 일본은 꺼리고 미워하여 박멸할 음험 수단으로써 소위 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를 암살한다 하고 전국에 유력한 교도와 학생 수백 인을 포박하여 감옥에 가두고 말 못할 악형을 써서 당장에 죽기도 하며 병신이 된 그때의 참상은 세계 이목을 놀라게 했고 이로서 교회는 공포시대를 만났으니 우리는 신교의 자유도 없도다. 행정과 경찰제도는 전혀 헌병순사로 인민을 학대하며 관리는 상하 계급을 물론하고 전국 행정기관에 모두 일인으로만 임용하여 우리 민족은 상당한 기능이 있어도 국가 경영에 경험을 얻을 기회가 영구히 끊어 졌도다.  이와 같이 참혹한 정상은 더 말할 것 없이 저 일본은 우리 二천만 민족으로 하여금 저희들 희생에 쓰고자 할 뿐이로다. 슬프다. 이때 인도주의를 주창하며 세계평화를 실행하는데 저들이 감히 인도 아닌 악정을 행함은 우리 민족이 과연 묵묵히 보고 참음이 옳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을 수화 중에서 구제하며 일본의 독한 손에서 벗어나게 함이 곧 세계열국의 공동으로 협조할 것이니 우리 한족의 가장 긴급한 의무로다.  우리 한족은 四천년의 역사의 오램이 있으며 二천만 인민의 무리가 있으며 八만 二천방여리의 넓음이 있으며 자급자족한 천년의 산물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이미 독립할 자격이 넉넉하고 또는 동아일국에 웅거하여 대륙에서 패권을 잡은 가장 오랜 민족으로서 그 문학·예술·종교 각 방면에 혹 일본을 가르치며 혹은 지나(중국)도 더불어 동양문화에 공로가 많았으니 이는 우리민족의 독립할 능력이 넉넉한 것이라. 오늘날 민족자결주의는 결코 구주(유럽) 한 곳에만 편벽되어 행할 것이 아니요, 세계에 적용될 것이니 그러면 독립의 자격과 능력이 갖추고도 지금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주장함이 당연 하도다.  한국은 극동의 문이요 요새이니 우리 한국을 제하고는 극동문제가 가치 없음은 이미 지리상 긴요한 위치를 차지한 까닭이라. 그러하므로 동양 평화는 먼저 한국평화가 된 연후의 일이니 저 일본이 한국을 병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한 핑계도 이점에 있는 듯 하도다. 이제 만일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독립자유를 얻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그 생존상 자유를 위하기 때문에 일본을 향하여 영구한 혈전을 행할지라. 우리민족은 비록 하나의 병장기가 없으나 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된 뒤에 버리선 주먹으로서도 일본을 대항하다가 일인에게 학살을 당한 자가 十여만이 되었은즉 이를 증거 할지라도 우리민족은 그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뜨거운 피를 흘리는 날에는 극동 한 모퉁이가 곧 수라장을 이룰 터인즉 동양 평화는 영구히 유지할 수 없을 지로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한 후에 중국을 위협하여 그 세력을 만·몽(만주·몽골)에 부식하며 또는 시비리(시베리아)에 야심을 펴서 지금 실행하는 중인즉 세계 평화는 어디서 유지되리오. 고로 동양 평화의 열쇠는 곧 우리 한국에 있은즉 우리 민족의 자유독립이 곧 세계평화의 기초라 하노라.  그러므로 우리 국민의회는 크게 소리쳐 생존의 자위발달과 인도정의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이에 독립을 선언하노라.결의안一. 본 의회는 조국 광복의 목적을 기어이 담하며 민족자결주의를 의지하여 한국의 정당한 자유 독립을 주장할 일二. 본 의회는 일본이 강박수단으로써 한국을 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함은 그 때 황제의 비준이 없을 뿐더러 한족 전체의 의사가 아닌즉 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의 늑약을 폐지할 일三. 본 의회는 위원을 만국 평화회(제2회 만국평화회의, 1907)에 특파하여 일본이 사기와 강박으로써 우리 국가와 민족을 멸망시킨 원성을 공고하며 국제연맹에 참여하여 우리의 독립을 굳게할 일四. 본 의회는 독립하는 이유를 세계 열국에 명백히 공포하기 위하여 각국 주재한 공영사에게 이 뜻을 그 정부에 전달하기를 위탁할 일五. 본 의회는 만일 이상 목적을 달치 못하면 한족은 인도의 평등을 얻지 못하여 일본에 대한 영구의 혈전을 선포할 터인즉 이로 인하여 동양평화의 각란과 그 생기는 화단은 우리가 그 책임을 담보치 아니할 일기원 四천 二백 五십二년 三월 일 대한국민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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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山文社 謙谷(박은식)要覓深紅踏淺靑 試將佳句答山靈春光無限誰先占 韻事如斯世所型樂意相關隨谷鳥 醉歸直到見昏星漢城自此添新畵 四海同胞共一亭(『皇城新聞』 二一五一號 光武十年(1906)四月十一日)

    5 서·발

    讀燕巖集跋昔人稱太史公文爲千年絶調後之學之者自歐陽廬陵歸震川以外鮮有能善學者也今觀燕巖先生之文疎宕有奇氣不囿於舊不騖於詭變化曲折超驤離絶眞史公若也豈不奇哉乃今世之人或徒見熱河日記而疑先生之文近於稗官是猶覩昌黎所作俗下文字而遂謂昌黎爲俗文耳焉可哉.密陽 朴殷植謹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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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韓西友學會會員朴殷植敬函于在日本東京太極學會僉員足下不佞天下之棄物也生世四十餘年無一成就迄今身世執傭於報館之役以度歲月自顧亦醜何足與當世有志有爲之士反覆其言論乎頃因 貴會員崔錫夏·姜麟祐兩君辱問甚勤奬借過分謬欲引置於朋儕之列況對西友學會期勉周摯感荷曷喩총擾中略有仰覆而掛漏甚悵更欲借此報紙以表餘蘊惟僉員之垂照焉.不佞於天下之學問未有得也世界之情形未有悉也治亂興衰之故未有講究也然而數十年來許多事變日接于耳目苟有動物之性者豈其無感觸而觀念乎.嗚呼衆治而我獨亂衆强而我獨弱衆智而我獨愚衆勤而我獨怠雖欲免今日之慘境其可得乎雖在古昔時代世界各國莫往莫來之日以此政治之紊亂也以此風俗之汚濁也決不可望其維持而全安況値此優勝劣敗弱肉强食之時代乎奴隸之辱魚肉之患實由自取復誰怨尤.然而物極則必變人窮則反本理之常也吾人到此十分盡頭瞻仰仁天哀號活佛則我同胞兄弟之중具有傾否回泰之力量運用起死回生之方法活我人民復我國權者誰耶欲求之於政界上官人則彼其僨轅敗轍之罪萬難贖救更不可以齒及矣欲求之於林下恬退之士則不過斷斷自守初無捨身救世之熱血者也.至於一般人民皆甘受壓制於暴虐官吏之下絶無自由活動的思想者也所謂各種社會蓋亦紛然而起譁然而集然究其所就亦未見良好結果持卵求晨其計太早炊沙成飯其想亦妄欲其糾合未開之民衆急就不世之功業則不惟不成反速其害可不戒哉.然則吾人承此積習腐敗之餘欲就好個社會則必先振起學業開牖衆智使一般同胞皆注意於公益熱心於忠愛私意袪而公理勝然後方成完全團體也此西友學會發起於吾黨之中而硏究學術贊成校務啓發我同胞之知識爲其主旨者也.顧此本邦之人尙在從前腐敗習氣之중滔滔是近利是貪虛妄是信而其能知敎育事業爲眞實遠大之利益者百無一二焉則本會之發達果是難乎其迅速也.所以區區愚算以爲此會組織之後必須磨以歲月積費心力告之以文字勉之以學業過了幾多年使吾同胞稍袪舊習漸長新智進於忠愛及公益的思想然後是會之發達可期也至若貴太極會㢠有不同於此者.蓋其位置立於文明空氣之중而一般會員又皆靑年有志熱血忠勇之男子其志趣之高尙氣象之活潑豈內地社會之可擬哉以此志氣以此見識何往不達何做不成對此時局將來同胞兄弟중具有傾否回泰之力量運用起死回生之方法者實有望於海外空氣중學會耳幸千萬加勉焉.[哲學界往復] (『大韓每日申報』 三六九號 光武十年(1906)十一月十一日)

    7 제문·묘갈명

      文苑   祭閔忠正公文  弔哭人犬韓俱樂部代表員 羅壽淵·朴承爀·成夔永  撰述人 朴殷植  嗚呼哀哉自古志士仁人忱臣烈士見危授命取義捨生者何限其人而若夫爲四千年祖國而死爲五百年宗社而死爲二千萬同胞而死者上下萬古惟公一人烈烈乎太陽之揭于昏衢也巖巖乎砥柱之峙于橫流也轟轟乎振寰宇而彌遠也赫赫乎照千劫而愈芳也彼强隣之武力足以破俄人七十萬衆而不能屈公之獨立矣彼狐鼠鬼蜮之輩將我三千里疆土賣與外人而不能奪公之獨立矣嗚呼公之獨立其非國家之獨立歟惟我二千萬用胞得公捨身救世之熱血灌之腦髓則自由獨立之精神將固結於此孰謂我韓遽失其獨立耶嗚呼公有遺書訣我同胞曰某死而不死期助諸君於九泉之下蓋公之忠魂義魄其將升爲列星左右上帝福澤我生民矣亦將奪爲雷霆驅除妖魔廓淸彊宇矣孰謂公之不存於斯世耶又曰堅其志氣勉其學問結心戮力以復我自由獨立則死者當喜笑於冥冥之中嗚呼我二千萬同胞之讀此遺訣者曷敢不銘之肝肺思所以奮憤捨生期復我自由獨立慰公在天之靈耶嗚呼若天心悔禍回國脈於綴旒濟民命於阽壑不失其自由獨立則惟我同胞子子孫孫拜公之像讀公之傅頌厥功德於永世矣如天之不弔國恥民辱不克伸雪茫茫苦海渺無超度之期則惟我同胞之未死者其亦搥胸濺血相率以從公于泉下而已悠悠蒼天將何以處我耶歷日痛哭呼籲無門匍匐几前告此血衷儼然乎其有歎息提命者耶嗚呼哀哉

    8 번역

      政治小說  瑞士建國誌  大韓每日申報社 發刊  光武十一年七月下浣石雲號瑞士建國誌目錄第一回 異國官毒下害民手 耕田佬大有愛國心第二回 對妻兒同心談國事 與朋友矢誓復民權第三回 殘忍兵恃劈奪緋牛 愛國士傳檄招人馬第四回 駕扁舟乘風破巨浪 唱歌曲苦口厲群心第五回 亞魯拿(아로파)募兵渡二河 華祿他隨父過市鎭第六回 懸冠冕人民頂下拜 折木柱父子被擒拿第七回 命射果假手殺英雄 求棹舟天心救好漢第八回 脫危險乘勢誅賊臣 趂時機擧義恢舊國第九回 成大事共和立國政 尊中興上下得平權第十回 祭偉人萬民歌大德 建遣像千古留芳名瑞士國計表土地 一萬五千九百七十六方英里人口 三百十一萬九千六百三十五名賦稅 三百八十一萬一千零九十八磅(파운드)度支 三百七十六萬四千三百九十八磅(파운드)國債 四萬磅(파운드)各省公債 一千萬磅(파운드)出口貨額 三千一百八十三磅(파운드)入口貨額 四千四百一十三萬三千九百五十三磅(파운드)額兵 一十四萬八千四百三十四名豫備兵 八萬五千六百七十六名後備兵 二十七萬五千名  瑞士(스위스)建國誌  序  夫小說者는 感人이 最易하고 入人이 最深하여 風俗階級과 敎化程度에 關係가 甚鉅한지라 故로 泰西(서양)哲學家가 有言하되 其國에 入하여 其小說의 何種이 盛行하는 것을 問하면 可히 其國의 人心風俗과 政治思想이 如何한 것을 覩하리라 하였으니 善哉라 言乎여 所以로 英·法·德·美(영국·프랑스·독일·미국) 各國에 學塾이 林立하고 書樓가 雲擁하여 一切牖民進化의 方法이 至矣盡矣로되 愈其小說의 善本으로써 匹夫匹婦의 警鐘과 獨立自由의 代表를 作하고 東洋의 日本도 維新之時에 一般學士가 皆於小說에 汲汲用力하여 國性을 培養하고 民智를 開導하였으니 其爲功也-顧不偉哉아 我韓은 由來小說의 善本이 無하여 國人所著는 九雲夢과 南征記數種에 不過하고 自支那(중국)而來者는 西廂記와 玉麟夢과 剪燈新話와 水滸誌等이오 國文小說은 所謂蕭大成傳이니 蘇學士傳이니 張風雲傳이니 淑英娘子傳이니 하는 種類가 閭巷之間에 盛行하여 匹夫匹婦의 菽粟茶飯을 供하니 是는 皆荒誕無稽하고 淫靡不經하여 適足히 人心을 蕩了하고 風俗을 壞了하여 政敎외 世道에 關하여 爲害不淺한지라 若使世之覘國者로 我邦의 現行하는 小說種類를 問하면 其風俗과 政敎가 何如타 謂하겠는가 乃學士大夫가 此等緊要的事에 慢不致意하고 學問家에 所宗은 性理討論의 湖洛競爭과 儀禮問答의 蚕絲牛毛而已오 功令家의 所誦은 蘇子瞻의 赤壁賦와 申光洙의 關山戎馬而巳니 試問하건대 這般工夫가 於國性과 於民智에 究有何益이 反히 此를 將하여 禮俗으로 自高하며 文治로 自誇하여 世界各國의 實地學問과 實地事業은 鄙夷하고 排斥하니 不亦愚乎아 現今競爭時局을 當하여 國力이 萎敗하고 國權이 墜落하여 究竟他人의 奴隸가 된 原因은 卽我國民의 愛國思想이 淺薄한 緣故라. 同是圓顧方趾의 冠帶之族으로 獨히 愛國思想이 淺薄한 것은 一則學土大夫之罪오 二則學士大夫之罪라. 余가 間嘗同志를 對하여 小說著作을 擬議하나 現方報館에 執役함으로 暇隙이 苦無할뿐더러 또 此等著作에 技能이 不及한지라 抱志莫遂에 徒深慨嘆터니 適以微疾로 委頓牀第-十餘日이라. 精神이 不甚昏矇할 時에는 敗箱의 殘書를 抽하여서 寓目할 새 마침 支那(중국)學家政治小說의 瑞士(스위스)建國誌一冊을 得하니 披閱數日에 殆乎忘病이라. 夫 瑞士(스위스)는 歐羅巴(유럽)洲中央에 在하여 疆域은 一萬五千九百七十六方英里오 人口는 三百十一萬九千六百三十五名에 不過한 一小國이라. 西曆十二世紀 卽 支那(중국)元朝元貞年間을 當하여 强隣日耳曼(게르만)의 所佔을 被하여 壓力이 無限에 生靈이 塗炭이라. 牛馬가 되고 奴隸가 되어 殆히 人理가 無해지니 皇天이 瑞民을 不遺하사 獨立自由를 克復할 一大英雄을 誕生하니 維霖惕露(빌헬름 텔)가 其人이라. 崛起田間하여 奮臂一呼에 國民이 振起하여 마침내 異國의 覇絆을 脫하고 共和政治를 立하여 萬年不朽하니 彼西國에 轟赫宇宙한 拿破倫(나폴레옹)과 華盛頓(워싱턴)의 功業이 實로 維霖惕露(빌헬름 텔)의 芳軌를 襲한 者라. 至今 泰西(서양)의 文明制度가 皆瑞士(스위스)에 起點하여 赤十字會와 萬國公會와 交通郵政會 等에 區區한 瑞士(스위스)가 其牛耳를 執하니 其遺澤의 垂世가 豈不遠哉아. 天下後世에 玆瑞士(스위스)建國誌를 讀하는 者는 誰가 愛國思想과 救民血心이 奮發치 아니하리오. 余乃病을 强하며 忙을 撥하고 國漢文을 和하여 譯述을 竣了에 爲之印布하여 我同胞의 茶飯閱讀을 供하노니 惟我國民은 舊來小說의 諸種은 盡行東閣하고 此等傳奇가 代行于世하면 牖智進化에 裨益이 確有할지라. 異日我韓도 彼瑞士(스위스)와 如히 屹然히 列强之間에 標置하여 獨立自主를 鞏固히 하면 我同胞의 生活이 便是地獄을 離하고 天國에 躋함이니 豈不樂哉아. 此目的을 達코자하면 惟是愛國熱心이 打成一團에 在하다 하노라.  大韓光武十一年七月日謙谷散人序  瑞士建國誌  廣東鄭哲貫公 著  漢城朴殷植 譯述

    9 논설

    務望興學  本記者가 入此新年하여 大韓國家의 命運과 人民의 幸福을 爲하여 最히 企祝希望하는 者는 國內에 學校가 취增하여 敎育이 興旺함이로다. 現今大韓國勢를 貶論하는 者가 雖曰, 未如之境에 至하였다하나 本記者所見에는 但敎育一事만 興旺하게 되면 綴旒한 國脈을 可以回泰할 것이오, 墮地한 國權을 可以克復할지니 使韓國人士로 甘作他人之로 隸하고 不有國家之思想이면 已矣勿言이거니와 欲使其國으로 復其獨立之光榮하고 欲使其民으로 不失其自由之權利면 오직 敎育을 擴하여 民智를 發達케 함이 第一要務니 人哉라 敎育之力이여. 垂絶한 國運을 挽回하고 濱死한 人民을 蘇活케 하는 者로다. 何以證之오. 昔에 普魯士(프로이센)가 法皇(프랑스황)皐坡倫(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人敗한 바 되어 疆土는 將次 法(프랑스)의 藩屬이오, 君臣은 將次 法(프랑스)의 臣妾이 될지라.  普國(프로이센)賢相 須太(오토 폰 비스마르크) 氏 曰, 國家의 大恥를 雪코자 할진대 반드시 國民을 先敎하여 忠君親上之心을 培養하리라 한대 普王(프로이센왕)이 其言을 用하여 國步艱難之際에 銳意熱心으로 敎育을 專力하더니 其後 六十年에 法國(프랑스)과 開戰하여 城下之盟을 受하고 累鉅萬償金을 徵하고 二州之地를 割하여 普國(프로이센)에 屬하니 由是로 普(프로이센)將蒙見杜計(헬무트 폰 몰트케) 氏 曰, 今日 我國이 法國(프랑스)을 勝함은 其功이 宜歸於小學校라 한지라. 由比觀之컨대 變弱爲强하고 化腐爲新하는 無上妙法은 敎育이 是也니 韓國人士는 將來에 奴隸와 牛馬를 免하고 自由獨立을 回復코자 하거든 急急히 學校를 設立하여 敎育을 振興하여 보시오.(『皇城新聞』 光武十年(1906) 一月 十六日)

    10 범례

    1. 제5권은 국내·외 각종 신문잡지와 그 밖에 문헌에서 수집한 박은식의 일반적 詩文을 수록한 것이다.2. 본권의 편목은 자료의 편의상「人物考」·「我東古事」·「宣言書」·「詩」·「序·跋」·「書」·「祭文·墓碣銘」·「飜譯」·「論說」로 분류하고 같은 편목의 글은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3. 수록한 시문은 가능한 한 원자료를 영인 수록하였으나 판독이 어려운 경우에는 새로 조판하였다. 4. 수록한 시문의 제목은 원칙적으로 원자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5. 간찰 등 초서로 된 글은 번역문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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